작년 5월 가뜩이나 마스크를 써서 답답한 가운데, 이른 더위로 더더욱 답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마가 49일간 지속되었다.
마스크도 지겨웠고, 더위도 지겨웠고, 비도 지겨웠다.
물론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료진과 실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을 생각하면
아주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올해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작년과 다르다.
늦은 봄인데도 비가 자주 온다.
비의 양도 제법이다.
작년과 같은 지속적인 폭우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해본다.
비를 맞는 들판에서 어린 식물들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비가 오면 계단을 오르는 운동을 했었다.
오늘은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하러 나왔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마스크는 여전히 잘 적응되지 않는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는 풀내음과 향기를 맡을 수 없다.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혀 없다.
마스크를 벗고 촉촉한 비의 향기를 느낀다.
풀과 나뭇잎의 냄새도 진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숲 전체의 신선한 향기가 몸과 마음으로 깊숙이 밀려온다.
잠시 한 없는 자유로운 느낌이 동심원처럼 생각과 몸으로 번져간다.
10년 전 일시적으로 후각을 상실한 적이 있다.
많이 놀라고 많이 답답했다.
병원에서는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답을 얻었다.
평생 후각을 상실하고 살고 있는 선배의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한 달 반 만에 돌아온 후각이 신기해 며칠 동안 킁킁 거리며 온갖 냄새의 향기에 취해 살았었다.
그 생각이 지금 이 빗속에 불현듯 다가온다.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 냄새를 맡으며 길을 걷는다는 것
이렇게 빗속에서 마스크를 벗고 산책을 한다는 것이 한없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빗줄기에 살짝 반사되는 가로등 불빛이 주는 낭만 속에서
일상 속 가볍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다.
주변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만남이 제한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타인과 연대해있는 존재임을 더 깊고 더 넓게 알게 되었다.
가족의 건강과 이웃의 건강이 나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집은 단지 휴식처일 뿐 아니라 지치고 힘든 내 영혼을 보듬어주는 성소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먹는 한 끼의 음식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자존감, 자유의지, 열정, 학습, 타인에 대한 존중과 감사 등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가는 존재임을 이전보다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맨발로 이 공원 숲길을 걸어보리라.
좀 더 자유로운 몸과 마음을 느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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