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면회
작은 희망의 끈이 밝혀놓은 일상의 소중한 삶
한 인간의 삶은 그가 온전히 그의 힘으로 걸어온 삶이 아니다.
엄마의 존재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엄마의 존재는 그러므로 달리 대체 불가능하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엄마에게 있다.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한참 동안 아주 오랫동안
아니 지금도 무수한 엄마의 노동이 나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2020년 1월 7일은 아직 코로나 국면으로 접어들기 전이었다.
다리 수술 이후 도립 요양병원으로 모셨던 어머님께서 사경을 헤매고 계셨다.
병원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고 어머님을 면회 갔다.
불과 입원 1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풍이 불고 비가 사선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심란하고 가눌길 없는 슬픔이 목구멍을 타고 심장으로 삼켜졌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잡기 위해
다음날 곧바로 휴가를 내고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는
손자인 아들을 데리고 다시 면회를 갔다.
바로 그날 오후 6시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워서 꼼짝을 못 하시던 분이 보조기에 의지해 걷기 시작하신 것이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손자의 존재가 나의 삶에 의욕을 불어넣었다고 하셨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경우보다는 실망을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희망과 기쁨이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이 기적과도 같은 어머님의 회복은 나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가족의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깨달음은
사소한 일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근거를 어머님께서 마련해주셨다.
오늘 나는 기쁜 마음으로 어머님을 뵈러 갔다.
벌써 1년 반이 훌쩍 가버렸다.
밝은 모습으로 앉아 계신 어머님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주섬주섬 꺼내놓고 거기에 맞장구치고 환하게 웃으셨다.
무엇보다 손자 손녀의 근황을 설명할 때는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셨다.
손자 손녀들의 영상 편지에 자꾸 대화를 하려고 하셔서
옆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도 같이 웃으신다.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해 어머님과 같이 회상한다.
아버님의 지치지 않는 노동 덕분에
어머님께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신다고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나와 형제들 역시 아버님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있노라고 말씀드렸다.
11년 동안 광산 노동자로서 이루어 놓으신 업적을
고스란히 연금으로 돌려받았지만 아버님은 그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오히려 진폐증으로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님과 우리 삼 형제에게는 아주 큰 선물을 주고 가셨다.
병원비와 요양보호사 간병비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청춘을 갈아 넣은 노동의 대가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는가?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은 감사해야 할 것들에 감사하고
사랑할 것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임을
어머님과 나는 짧은 시간의 대화로 확인했다.
다음번 면회를 준비하던 동생에게 병원으로부터 면회 중단 통보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 대유행은 언제쯤 진정될지 모르지만 아내의 재촉으로 면회를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신 어머님의 삶 속에
내 삶이 녹아있고 내 삶에 어머님의 삶이 녹아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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