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음악, 잊고 있던 그림, 잊고 있던 추억, 잊고 있던 친구와 잊고 있던 물건들을 일상 속에서 재발견할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면 기억해낼 기회는 매번 사라진다. 잊고 있던 그 모든 대상들은 기억해내기를 희망한다. 자가격리 기간에 그 간극을 메워줄 기회를 찾았다. 기억해내는 순간이 빛나는 순간이다. 내가 살아왔던 삶은 언제나 옳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고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밤하늘의 별처럼 하늘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공간적 제약은 뜻밖의 선물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드물게 출장을 떠나고 드물게 보고 드물게 샀던 물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고 그 사물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대신했던 바로 그 물건들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리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아내의 작품들에게까지. 당연한 것들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다. 우연도 필연이다. 나는 그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그게 내 삶의 일부이기에.
니스의 해변에서 목각인형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는 흑인 청년들을 만났다. 이 목각 인형들은 원시적 느낌과 뭔가 생략되어 있지만 생략된 모습이 구체적인 어떤 모습을 만들고 있는 듯 약간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두 개 합쳐서 50유로라고 했다. 작품이 가진 가치를 후하게 보는 나는 호 구답게 얼른 계산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제지하면서 흥정을 한다. 헐 20유로에 저 두 가지 목각인형을 샀다. 자주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는데 온종일 집안에만 있으니 자연히 그리고 눈이 간다. 인류가 처음 생겼을 아득한 시원에 먹을 것들을 다 해결하고 난 뒤의 여유로운 가운데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법한 진지한 자세. 단순한 몸동작과 구도에 깊이 침잠하게 된다.
생 폴 드바스의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저 팔을 늘어뜨리고 있는 자세가 너무 여유롭고 은근히 고양이 답지 않은 위엄을 보여주는 듯해서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같이 놓여있던 붉은색 고양이도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색감이 잘 번지고 있고 모양도 잘 갖추고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70유로는 부담되는 돈이었다. 지금은 그때 붉은색 고양이도 무리를 해서라도 같이 사 왔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한다. 둘이 같이 있으면 외롭지도 않고 잘 어울리는 그림이 될 테고 볼 때마다 즐거웠을 텐데 너무 아쉽다. 가만 보고 있으면 왠지 같이 편하게 기대어 쉬라고 말하는 듯하다.
프랑크푸르트 출장 마지막 날 일행들은 모두 관광지로 향했다. 나와 나머지 여덟 명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도보로 탐색하고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발로 여행지를 추억하고 기억해낸다. 아침 10시에 문을 연 벼룩시장은 소박하고 다양한 볼거리들이 즐비했다. 대개 자기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도 괜찮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파는 사람들이 단번에 아마추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서투르고 투박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헤매다가 마침내 흥정을 시작했는데 싱겁게도 내가 원하는 가격에 선선히 물건을 넘기는 독일 아저씨에게 감사했다. 뭔가 대단한 보물을 얻은 듯 기분이 좋았다. 저 네 가지 목각인형을 몽땅 25유로에 샀다. 잘 다듬어진 예술품은 아니지만 뭔가 그럴듯한 형태를 갖춘 모습이다.
겨울의 삿포로 눈 내리는 거리 사이에 <천 엔 가게>에 들렀다. 모든 물건을 천 엔에 팔았다.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편안한 표정의 고양이 네 마리는 집 한편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 그 고양이들을 이뻐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아내가 만든 고양이들은 여러 곳에 분양되었다. 분양된 나머지 고양이들이 집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사물들에 묻어있는 추억을 들춰낼 수 있었다. 저 고정된 표정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웃음이나 표정이 동심원처럼 번져나간다. 그래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루에 한 번씩 인사를 나누는 게 습관이 되었다.
힘든 일이 한꺼번에 밀려와 몸이 꺾일 것 같은 중압감에 시달릴 때, 바르샤바와 크라쿠프를 다녀왔다. 크라쿠프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영입한 고양이들이다. 표정이 없어 보이고 생략된 듯한 고양이들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동적이지만 정적이기도 하고, 절반씩의 색깔이 특이해 보이는 작품인데, 사놓고는 눈여겨보지 못했다. 생략된 것들에 대해 깊이 음미해보게 된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은 표현을 줄이기로 마음먹는다. 대신 미소나 표정으로 대체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힘들게 말하는 것보다는. 늘 가슴속에 새겨두는 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
잊고 있던 것들, 혹은 주변에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재발견하는 기쁨 속에 더딘 시간은 조금씩 속도를 내면서 지나가고,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상적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