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과 시시콜콜한 일상
#1. 거대 담론 중심의 세상살이
철이 들고부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세상은 거대 담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국가와 민족, 민주화, 호헌철폐, 대통령 직선제 선거제도, 지방자치, 노동 3권의 보장, 88 올림픽....
시시콜콜한 개인적 삶과 약간은 거리를 두고 있던 거대 담론 중심의 세상 움직임은
사람들의 생각을 경직되게 만들었다고 나는 느꼈다.
거대 담론의 권위 앞에서 개개인의 시시콜콜한 일상사들은 약간 비껴서있었다.
어떤 원칙을 알게 되고 그 원칙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금기시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선을 느끼면서 갑갑해했으나,
나는 그 선 이쪽과 저쪽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대학생활을 보냈다.
자유롭게 선을 넘나드는 것에 관한 갈증이 지속되었다.
치열하지도 그렇다고 자유롭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다른 한편 거대담론이 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노동조건이 안 좋았던 시절에 광부 일을 하셨던 아버님의 삶을 돌아보며
일재의 잔재와 자본의 탐욕이 한 개인의 삶을 힘들게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노동인권에 대한 거대 담론은 좋지 않은 노동여건에 속해있던 많은 사람들의 실상을
알려주고 그들의 일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2. 일상의 발견
뜻밖에도 나를 거대담론과 개인적 삶의 경계인에서 풀려나게 해 준 것은 <일상>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상'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골똘히 생각했었다.
말은 표현의 영역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생기를 얻는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삶이란 한편으로는 매일 반복되는 단순함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생각하게 하고
실제로 질적으로 다른 삶을 매일 마주 대하면서
<일상>의 무게는 깊이 나의 뇌리에 남았다.
지금까지 내 삶에 영향을 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의 발견과 관련하여 이유나 근거를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일상'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들어왔다.
니체의 언어는 칸트나 헤겔만큼 난해하지는 않지만, 뭔가 건방진 자만심으로 가득 찼고
모든 내용들은 자기 확신에 차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의 책 내용에
주눅 들어 그가 말한 메시지의 복심을 찾지 못했다.
주변만 끌적 거리며 두 달을 포장마차에서 보냈다.
그러던 중 이 일상이라는 단어를 길어 올렸다.
내 삶의 거의 대부분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시시콜콜한 일상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더 이상 거대 담론을 알겠다고 머리를 비비적거리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나의 삶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자 모든 것들이 생각해볼 주제가 되었다.
#3.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일상
삶이란 태어난 후에는 곧장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쉼 없이 이어진 길을 가야 한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밥 먹고 일하고 대화하고 잠을 자는 일이다.
나의 일상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온 코로나.
일상 속 시시콜콜한 일들이 거대한 담론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숨쉬기 편하면서 예방 효과가 뛰어난 마스크를 찾는 일
체내 면역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걸맞은 음식을 먹는 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일
하루 중 단 한순간이라도 나를 조용히 치유하게 하는 시간을 만드는 일
적당한 운동을 통해 신체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는 일
꼭 필요한 만남 이외에는 조금씩 정리하는 일....
어느덧 코로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2년을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