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의 계절

서로의 내면 깊이 소통하는 시간

by 새로나무

가을은 혈기 넘치는 고3들에게는 다소 차가운 입시의 계절이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추위와 가을의 정취가 겹쳐진다.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막내딸이 어느새 자라서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다. 주말마다 막내딸과 여러 대학을 방문한다.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로 단 한번 학력고사를 보고 단 한 군데 대학을 지원했다. 기회는 단 한번뿐이었다. 단 한 번만 선택한다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없이 시간을 보냈다. 막내딸은 일곱 군데 원서를 냈다.


시험을 눈앞에 둔 자녀의 긴장된 눈빛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음을 일찍이 첫째와 둘째 입시를 보면서 깨달았던 바, 그냥 무심히 각자의 일을 한다. 나는 운전을 하고 딸은 마음속으로 준비한다. 실기시험을 보고 난 뒤 곧바로 익숙해지자 말수도 늘어나고 그동안 서로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보다는 요즘 서로 선호하는 노래와 가수들의 특징들을 편하게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긴장을 풀만한 대화를 서로 주고받는다.


큰 딸은 나와 같은 인문사회계, 나와 비슷한 진로를 선택했다. 논술을 보러 여섯 군데 대학을 같이 다녔다. 다니는 동안 딸과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었다. 딸이 시험을 보는동안 나는 조용히 고독을 즐기며 카페도 구경하고 책도 읽었다. 논술시험 본 대학 모두 떨어지고 나서는 가족 모두 말수가 줄었다. 수능 당일 시험 끝나고 맨 마지막에 울고 나오는 딸을 달랬던 시간이 아득하다. 그러다가 정시에 합격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더구나 수시에 떨어졌던 대학에 합격해서 그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딸은 나와는 달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며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대학입시와 대학교육이 딸 인생을 열어가는 데 있어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둘째 아들은 사회체육을 전공하겠다고 해서 세 군데 정도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크고 작은 다툼 속에 믿음을 주고받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메꿔주기에 충분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입시의 계절에 아이들과 같이 다니는 길은 부모와 자식 간 서로 못다 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가을은 입시의 계절이다. 나도 입시를 치렀고 아내도 입시를 치렀고 우리 아이들 셋 모두 입시를 치렀고 치르고 있다. 늘 가을이 되면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탈락의 상처를 안게 된다. 대학은 예전처럼 졸업과 동시에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일정한 지분을 행사할 수 있던 영향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코로나는 이와 같은 경향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 더 이상 대학 입시 때문에 울고 웃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라고 잠시 생각해본다. 긴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면 지금 시험 보러 간 막내딸이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문제 해결 능력이나 창의력 등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어디를 나왔고 무슨 공부를 했다는 단순한 인증서가 얼마나 의미를 가질지 그리고 그런 시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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