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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01. 2021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만남에 대하여

처음 인연의 의미를 깨닫기는 쉽지 않다. 

모든 만남이 그렇듯 우연적이다. 

태어난 시간이 다르고 성장한 배경이 다르니 필연적인 만남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아닌 것이다. 

우연한 만남이 필연적인 인연으로 향한다. 

각자의 생각과 만남의 내용에 달려있다. 



선배와 내가 만난 건 1994년 12월 13일의 일이다. 이전 부서에서 꼰대 어르신들을 여러 번 놀래 드렸더니 아마도 인사과에 손을 쓰신 것 같다. 영문도 모르고 다른 부서로 가게 되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가자마자 너무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어떤 안건이 있어서 찾아가면 늘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연구비를 어음으로 받아 은행을 통해 중간경과기간을 거쳐 다시 현금으로 인출하고 연구비를 지급하는 일이 27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처음에는 많이 툴툴거렸다. 내게 많은 일을 던져주고 다른 부서로 전보한 선배가 약간은 얄밉게도 느껴졌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며 어느덧 나에게는 일의 근육이 형성되었다. 3년이 지나면서 생각의 근육과 일의 근육이 커져서 좀 더 큰 스케일의 일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지점에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나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은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오선 배로 인해 일을 하는 방식과 사람을 만나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방식에 대해 내 나름대로 체계를 세울 수 있었다.


툴툴거리는 내게 조금 더 앞으로 나가길 권하고 쑥스러운 응원의 손길도 보냈다. 그러다가 조직 전체의 문제점을 서로 공유하고 TF의 일원으로 같이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세상일이 그렇듯 조직의 문화를 바꾸거나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끝내 실패로 끝났으나, 그 일로 인해 선배와 나와 유대관계는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서로 같은 부서에서 일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연대의 끈이 늘 살아있었다. 



2006년 어느 날 퇴근길에 이웃동네 살던 선배가 어디를 가자고 했다. 그곳은 자전거 샵이었다. 사실 마라톤을 하다가 허리가 아파 중단한 상태에서 적절한 운동이 필요했는데,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만났다. 난생처음 내 몸을 위해 산악자전거를 샀다. 그 충동구매로 아내와 한동안 다투었지만 3년 동안 산으로 들판으로 열심히 달렸다. 첫 라이딩에서 화야산을 찍고 왔던 140km, 매봉산 산자락을 돌며 산악자전거의 조용한 매력에 한껏 빠졌던 기억, 속초에서 동해까지 바람을 안고 달렸던 기억, 망우산에서 여러 번 넘어지며 난코스를 자전거로 오르던 기억, 청평 호명산에서 시속 75km로 내달리다가 너무 무서워 멈췄던 기억, 마석 터널 직전까지 끝없는 오르막을 오르며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싶었던 기억, 북악 스카이웨이를 쉬지 않고 단번에 치고 올라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밀려온다. 



3년이 지나고 자전거를 그만두고 오랫동안 각자의 삶에 바빴다. 그런데 올해 선배가 같은 부서로 오시게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치밀하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모습에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엄청난 유머감각을 발산하신다. 그 치명적인 매력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갔다. 헐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분이셨나 싶다. 사람을 띄엄띄엄 보는 습관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선입견이 나의 눈과 귀를 멀게 하지는 않는지 경계할 일이다. 


선배의 미래설계의 첫 단추가 잘 꿰어져 마침내 결실을 맺고 새로운 출발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겠다고 퇴사를 하게 된 오늘 마지막 날, 가슴 한편에 섭섭함이 밀려온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쉬울 때도 있지만,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지금처럼 오랫동안 쌓였던 정을 꺼내볼 인연이 없다가 갑자기 그것을 꺼내 허겁지겁 보고 다시 헤어지게 되는 시점이 되고 보니 더더욱 그렇다. 선배 앞날에 순탄한 발걸음, 건강한 발걸음이 늘 있기를 바라며, 지금 헤어지는 것은 특정한 조직의 틀속에서 헤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만남을 떠올려본다. 긴 인생을 놓고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더 자주 뵙게 될 것 같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아쉬움은 점점 더 깊어간다. 신영복 선생의 글귀가 떠오르는 저녁이다. 막걸리 한잔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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