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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04. 2021

먼 길 떠나는 어르신

친구 아버님이 마련해준 삶의 한 자락

친구 아버님 부고를 접하고 보니 문득 2016년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렸다. 당시 내가 정신없는 와중에 친구는 장례절차 처음부터 묵묵히 화장장과 수목장까지 같이 함께 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와 같은 11월이다. 스산한 가을바람과 차가운 봄바람은 어르신들에게는 힘들게 건너야 할 고통의 강이다. 세상의 모든 어르신들께 기운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는 어머님의 안위를 잠시 떠올려보았다. 


강릉 가는 기차가 1시간 40분이라 그 편으로 가려했는데 마침 차를 가져가는 친구 차 얻어 타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 뵙고 3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마주한 선배님은 멀리서도 그 걸음걸이를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세월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았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지나간 세월이 압축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차 안을 채웠다. 먹을 것을 나누면서도 이야기는 끊임없다. 일상 속 모든 이야기의 서사구조는 흘러간 과거에 대한 기억들, 현재의 삶에 대한 집중,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희망으로 연결된다.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삶이 자신을 든든히 받쳐주기 때문이다. 모두 든든하게 현재에 발을 딛고 있어서 아늑하게 느껴졌다. 


상주로서의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친구들을 맞이하는 친구는 몸과 마음 모두 2년 전과 달리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장례식에서 덕담을 건네기에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건강해진 모습의 덕담을 건넸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는데 영정사진 속 친구 아버님은 밝게 웃고 계신다. 엄숙한 마음으로 망자와 상주에 대한 예를 갖춘다. 한 사람이 돌아가신다는 것은, 살아 계시는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남겨놓으신 자손들, 이 거대하고 장대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남을 의미한다.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들고 오는 정성 가득한 쌀 한 줌과 경건하고 엄숙하며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경전으로만 접했거나 겉으로만 접했던 과거의 교만한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고 있다는 친구의 말속에서 마침내 찬란한 구도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척추 디스크가 심해서 걸을 때마다 통증을 느낄 때 어느 절이나 성당을 찾았는데 그 경내에서 혹은 성당 안에서 허리가 아무 통증을 느끼지 않고 편안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들이 가진 진심과 깊은 에너지를 거기에 털어놓고 돌아가고 그 에너지가 쌓여 나를 감싸준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내가 말했다. 순수하고 경건하며 진심을 다하는 에너지야는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보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 시간, 공간 이 삼간 속에서 우리는 완벽한 주인이 되고 그 순간을 제대로 느낀다면 삶의 진실한 모습에 한 걸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오랜만에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들 다운 대화가 오고 간다. 지난 30여 년 동안 삶이 어떠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진지한 이야기로 들어가니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상주인 친구에게 소주 한 잔 권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진지하고 맑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매장을 하고 무덤으로 인해 후손들이 복을 받거나 불행을 받는 따위의 일은 있을 수 없는 악행일 수 있으므로 화장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길이라는 얘기,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세포와 미생물들이 함께 존재했는데 일시에 화장해버리면 그 순리에 역행한다는 얘기, 먼 옛날 페르시아의 왕이 통치하던 시절,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신봉하므로 신성한 불을 사람을 화장하는데 써서는 안 된다는 부족과 그렇지 않은 부족을 서로 역지사지하도록 해서 평화롭게 다스렸다는 얘기, 일상의 삶에서 발견하게 되는 현상과 양자역학을 연결시키는 흥미로운 얘기, 우리 몸은 에너지 덩어리이며 죽으면 그 에너지는 흩어져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얘기.... 


철강사업을 하는 선배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IT자원 재생사업을 하는 친구는 사업을 더욱 확장하고 공장을 신축했다고 한다. 조급한 마음이 든단다. 미래 세대를 위해 탄소를 줄이려는 사회적인 노력은 더디게만 보이고 그래서 더더욱 사명감을 느끼고 잘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든다고 했다. ESG경영이라는 말들이 아직은 허공을 가르고 있을 때 이렇게 진지한 실천을 고민하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와 예술을 연결하여 새로운 스토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친구에게서는 단단한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예술세계와 음식사업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는 친구의 탄탄한 준비성과 앞으로의 희망을 공유하고 보니 새로운 멋짐을 발견하게 된다. 지나간 세월의 간극은 이야기와 함께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함께 장례 끝까지 있지 못하고 올라와야 하는 미안함을 친구에게 전하고 돌아선다. 한편으로는 허전한 마음과 다른 한편으로는 한가득 채워진 마음이 교차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내가 심각하게 느꼈던 시시콜콜한 사소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잊기보다는 그 사소함을 누르고도 남을만한 깊은 에너지를 받고 배울 수 있었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면서도 삶이란 잠시 왔다가 가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신선한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온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신비로운 힘을 갖고 온다.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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