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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13. 2021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고 선물이다

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작년 초 삶의 위기를 극복하시고 견뎌내신 어머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2020년 1월 7일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절망적이었다. 다음날 손자를 안고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 지금은 기적처럼 정정하게 운동도 매일매일 하시고 건강을 회복하셨다. 손자가 번 돈으로 산 옷을 입으시겠다고 하셔서 다음번 면회 갈 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드렸다.


20대와 30대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들이 나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무엇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지 물어본다. 부모님들이 나와 같은 또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으로서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고 그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라고 얘기해줬다. 가식적으로 들릴 수 있어서 짧게 큰 딸아이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다.


2016년 11월 80세를 일기로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멍한 상황에서 차츰 적응해갈 무렵, 큰 딸이 학교에서 늦게 돌아왔는데 발가락에 염증이 있다고 했다. 살펴보니 고름이 맺힐 정도라서 12월 24일 토요일 동네 병원에서 드레싱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님께 안부 인사드리러 갈 때 딸아이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고향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난 무렵,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 아프고 힘들다고....


다음날 집에 도착해보니 발가락 상태가 약간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고름도 차있었다. 바늘로 고름을 뽑아낸다음 재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빛깔이 찜찜했다.


근처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드레싱을 다시 하는데 혈압을 측정하던 당직 의사선생께서 이상 징후를 포착하셨다. 혈압이 너무 낮아서 혈압상승제를 투여해야겠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병균이 혈액에 침투할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1시간이 지난 뒤에도 혈압은 그대로 낮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집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곧바로 고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마침 대기자들이 많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께 설명을 드리자마자 의사 선생님 두 분과 간호사 선생님 세 분이 급히 응급조치를 취했다.


담당의사선생은 나를 별도로 불렀다. 상황이 보호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안 좋다. 6시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 현재 환자는 패혈증 쇼크 상태라고 했다. 검색해보니 치사율이 70%가 넘는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겨우 발가락 염증인데 패혈증 쇼크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커다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치료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데 혈압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 사이 딸은 춥고 힘들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애가 탔다. 딸을 달래고 있을 무렵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긴급히 제안을 하셨다. 팔의 혈관을 통해 혈압상승제를 투여하는 것이 효과가 없으니 중심정맥 시술을 해보자고 하셨다. 심장 바로 위 가슴에 구멍을 뚫어 곧바로 심장에 혈압상승제를 투여하자고 하신다. 오직 한 가지 가능성만 남은 상태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이 시술을 하실 수 있는 분이 당직을 서고 계셨다. 하늘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의사 선생님을 수배하고 병원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딸의 목숨은 장담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술은 정확히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세 시간 뒤에 딸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딸이 살아나서 감사했다.


5년이 지난 올해 어버이날 처음으로 아들과 딸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아들이 선물해준 헤드셋 음질이 너무 좋아 고맙다고 했다. 고3 막내딸은 노래를 선물했다. 그리고 저녁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딸이 흰 봉투를 내밀었다. 아마도 모른 척 연기했을 텐데 그 정도 표정은 나도 읽을 줄 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첫 월급, 첫 용돈. 네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선물이다. 만약 그때 잘못되었다면 내 인생도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니 선물은 내가 줘야 한다는 마음이 깊은 곳 저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기적의 순간들은 가까운 곳에 있다. 늘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맞을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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