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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21. 2021

하루를 시작하면서 #2

서서히 눈을 뜨는 즐거움 


새벽에 서둘러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면 깊이 잠들기 어렵다. 알람을 해놓고 자는데도 불안하다. 특히 여럿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잠을 더 자다가 늦어서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던 일을 떠올리며 불안하게 잔다. 그리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고 눈을 팍 뜨자마자 움직인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없는 한가로운 평범한 날에는 서서히 눈을 뜨는 즐거움이 있다. 잠과 현실 사이에서 약간은 오락가락하는 게으름을 최대한 즐기면서 서서히 눈을 뜨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잠의 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곤하게 잤다면 더더욱 서서히 눈을 뜨는 것이 즐겁다. 옅은 잠을 잤다면 잠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시 눈을 감고 body scan


다시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내 마음의 눈으로 발끝을 느낀다. 그리고 천천히 발등과 발목을 느끼면서 아주 서서히 올라온다. 발바닥의 용천과 발꿈치를 깜빡했다. 정강이의 앞 뼈와 옅은 살들을 살펴보고 다시 뒤로 가서 종아리의 살들이 만져진다. 이제 무릎으로 올라온다. 어제 걷거나 앉았다 일어서면서 수고했을 무릎을 둘러싼 근육과 연골의 피로를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내 몸의 기초대사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허벅지는 단단하게 느껴진다. 특히 안쪽 허벅지는 더더욱 나의 몸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느낌이다. 이걸 애착이라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골반을 지나 허리쯤에서 잠시 멈추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멀리 손끝으로 향한다. 매일 컴퓨터를 사용해 머리의 명령을 수행하는 충직한 손끝과 손마디 마디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수고로움이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모양이다. 손바닥의 아늑한 질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올라온다. 손등에 방사형으로 뻗어있는 핏줄들의 옅은 파란색과 손등의 붉은 색감이 잘 어울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팔목과 팔꿈치와 팔등에서 서서히 어깨를 지나 목으로 올라온다. 


다시 허리로 돌아와 이번에는 안쪽의 깊은 구석을 느껴본다. 밤새 연동운동으로 쉴틈 없었을 장과 비어있는 위를 지나 목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허리를 지나 척추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있는 등을 지나 목으로 올라온다. 이제 입안으로 들어가 치아와 혀를 비롯해 입안을 느낀다. 그리고 깊은 호흡을 하고 있는 코를 지나 눈으로 올라온다. 눈을 감은 상태로 머리끝으로 올라온 다음 이번에는 머리에서 헬기를 타고 몸 전체를 다시 조망한다. 이 우주가 만든 작품 한 편을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살아있음에 대해 안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그 출처는 희미하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시작되는 지점을 깨닫는 곳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직전 4미터 되는 다리에서 추락하던 순간은 삶과 죽음의 기로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깊은 곳에 발을 디뎌 숨이 멎던 순간, 초등학교 4학년 때 안동 외갓집에서 밭 한가운데서 미숫가루를 먹다가 숨구멍이 막혔던 순간들이 내가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하는 마음을 더 깊고 넓은 곳으로 안내한다. 이제 또 멋진 하루를 열어젖힌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12세기 유리 거울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금속거울을 사용했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금속거울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물에 얼굴을 비춰야 하는 평민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라고 상상해본다. 12세기에 유리 거울이 등장하고도 한참 뒤인 16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찍어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저가형 물품이 되어서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쉽게 거울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 모든 것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시대를 타고나는 것은 운명이다. 문득 용산 전쟁기념관에 갔던 일을 떠올린다. 거기 전사자 명부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15살과 16살 그리고 17살의 꽃다운 청춘들의 영혼들이 명부에 들어 있어 그들의 운명을 상상해보니 기가 막혔다. 나는 운이 좋아 지금 여기 살고 있다. 거울을 통해 시작된 내 일상에 대한 돌아봄이 그만 거기까지 가고 말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운명에 감사하게 되다니....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우선 이마와 볼을 살펴본다. 붉은빛이 감도는 걸 보면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몸속 혈액과 림프의 흐름을 볼 수 없지만 얼굴빛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찬찬히 눈을 들여다본다. 흰자위가 맑은 지 아닌지 살펴본다. 직장 초년 시절에는 일이 많아 피로가 쌓였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았다. 왜 사람은 서로를 도와주면서 평화롭게 일을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건드리고 비난하고 비교하고 스트레스를 거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런 스트레스의 칼날이 들어오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겨우 술을 한잔하고 삭히거나 아니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그 감정의 파도들이 잦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럴 때 거울에 비친 나의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붉은 실핏줄이 자주 선명하게 보이고, 흰자위는 전체적으로 빛깔이 맑지 않고 탁해 보였다. 어느 때인가는 약간 누런 빛도 띨 때가 있다. 눈은 몸과 마음이 맑은지 피곤한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맑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노력하지 않으면 맑은 눈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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