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산책#1
가게 앞으로는 탁 트인 전망의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3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보기에도 시원하다. 바다와 반대편에는 차를 놓고 뜰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비치되어 있다.
1층 안쪽으로는 역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계단식으로 편안하게 고정식 긴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어 나와 같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멍 때리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다.
옥상으로 올라서니 전면은 유리로 되어 있고 아주 편안한 소파 같은 일인용 의자가 비치되어 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 차 한잔 하면서 저 먼바다를 유유자적 구경하기 딱 좋은 장소다. 주변을 보니 문득 영화 건축학개론의 바다가 보이는 집이 생각났다. 제주의 풍경은 집과 사람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일단 차를 마시기 전에 둘러본 소감은 공간이 넓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좋았다. 가게 일하시는 분에게 Orrrn의 뜻을 물어보니 우리말 '오른다'의 그 '오른'의 의미라고 한다.
한동안 산을 올라가는 걸 좋아했었다. 설악산도 가고, 지리산도 가고, 태백산도 자주 갔다. 힘들게 올라 바람맞으며 쉬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꼭 산 정상을 가지 않더라도 산에 온 것 자체로 즐기게 되었다. 어떤 날은 계곡에 발 담그다가 내려온 적도 있고 아예 산을 오르려다가 근처 식당에 주저앉아 산을 배경으로 막걸리를 마시며 유유자적하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어딘가에 오른다는 것이 꼭 그 정상이나 꼭대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 이름이 마음에 든다. 어디든 가는 곳에 내가 오르는 것이다. 오른다고 해서 꼭 물리적으로 어떤 지점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리라. 시야가 트인 곳이면 어디든 오른 곳이 될 터이다. 가게를 만들고 이름을 지은 건 주인의 몫이지만 해석하는 것은 내 맘이다.
화장실을 양쪽에 두고 그 가운데 그다지 크지 않은 여인의 그림이 붙어있다. 18-19세기 어디쯤인가에 있을 법한 그런 여인의 모습이다. 특별하게 무슨 의미를 두고자 한 것은 아니되, 그 그림이 구분하고 있는 양쪽이 보통의 남녀 화장실이 아니라 그냥 둘 다 남녀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다. 집에서 막내딸에게 늘 야단을 맞는다. 요즘 추세가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이고, 그게 위생적인 면을 비롯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잔소리한다. 여전히 습관이 되지 않는데 이런 화장실들이 늘어나면 나 역시 소변보는 습관을 바꾸어야햐지 않을까 생각한다.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커피를 한잔 얻어마신다. 커피의 진한 향기와 브라우니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모양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다음 일정이 급해 일어서야 했다. 좀 더 시간이 있고 홀가분하게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는 카페의 개념을 많이 바꿔놓았다.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곳 제주에서 만난 카페는 좀 더 여유 있는 쉴만한 곳의 인상이 선명하다. 쉴만한 곳은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쉴만한 곳이 이렇게 늘어날수록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이니 좋은 일이다. 커피 향이 내내 후각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