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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30. 2022

사무실, 잠시 카페

밀려오는 커피에 관한 추억

블랙커피는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고 계시던 송탄 고모님 댁에 놀러 갔을 때 미제 커피맛을 처음(아마도 맥스웰이었던 것 같다). 블랙커피에 설탕 두 스푼을 넣어 먹는데 진한 커피 향기를 느끼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고향집에서 늘 어머님은 블랙커피와 프리마, 그리고 설탕을 따로 구입해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침저녁으로 타서 드셨고 나도 마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끔 고향집에 들러 밤새 공부한다고 커피를 한 열 잔쯤 마시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커피의 카페인도 나의 잠을 쫓아내지는 못했다.



대학 입학 후 우리 학과가 속해있는 건물 1층의 커피자판기가 생각난다. 밀크커피, 설탕 커피, 블랙커피 등 세 가지 메뉴에 가격은 시중보다 싼 100원이었다. 정문 앞 백반 가격이 6백 원, 학생식당 백반이 3백원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밥보다 커피값이 비싼 경우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커피는 밀크커피였다. 달큼한 설탕 맛에 프림과 커피 향이 녹아드는 맛. 친구들과 공강 시간에 한잔씩 뽑아 들고 담소를 나누던 풍경이 눈앞에 선하다. 세월이 흘러도 추억의 그림자는 짙게 남아있다.


어느덧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한국사회의 주류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들이 명멸을 거듭하면서 커피맛도 진화해왔던 것 같다. 점점 더 블랙커피에 친숙해질 무렵 강산에의 <블랙커피>라는 노래가 거리에 흘러나왔다.




커피 하나에 설탕 절반 넣고서
물은 되도록 많이 부었지
머그잔 찰랑이는 커피 향기
무슨 맛에 먹는지 먼저 마셔보며 건네주곤 했어

잊지 않고 나의 기호 그대로
가끔 나처럼 타서 마실 땐
얼굴 찡그리며 숭늉처럼 싱겁기만 하다고
너는 웃으면서 타 주곤 했었지

한 모금에 너의 따뜻한 그 손길을
한 모금에 너를 가슴 가득 느끼며
마지막 남은 한 모금 쓰디쓴 헤어짐
그런 이유 있기에 커피는 블랙을

잊지 않고 나의 기호 그대로
가끔 나처럼 타서 마실 땐
얼굴 찡그리며 숭늉처럼 싱겁기만 하다고
너는 웃으면서 타 주곤 했었지

한 모금에 너의 따뜻한 그 손길을
한 모금에 너를 가슴 가득 느끼며
마지막 남은 한 모금 쓰디쓴 헤어짐
그런 이유 있기에 커피는 블랙을 

- 강산에



아메리카노를 자주 먹기 시작한 지 어느덧 6년이 지났다. 원래 위가 약해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아침에 마주하는 커피 향기의 각성효과가 온몸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한잔, 오후에 한잔 마시는 커피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커피 머신에서 나오는 커피는 선택의 여지없이 기계가 주는 대로 받는다. 물론 물을 희석하는 재량은 나에게 있다. 커피 한잔에 찬바람과 동료와의 대화 한잔.... 더 바랄 것이 없는 찰나의 시간이 흐른다. 차와는 또 다른 느낌을 커피만들어 다. 차가 혼자만의 시간, 힐링, 고독한 순간의 위로라면 커피는 몸을 깨우는 진한 향기와 소통의 매개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드립 커피를 내리는 선배가 따라주는 커피를 한잔 마셨다. 갓 볶은 원두는 아니지만, 머신에서 내리는 커피보다 훨씬 진한 향기와 사람의 온기가 같이 전해져 맛의 깊이가 달랐다. 그날 이후 아주 가끔 드립 커피를 마시러 들렀다. 몇 달 후 30년 넘게 근무한 선배는 홀연히 퇴사했다. 그와 보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허전한 마음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 빈 공간을 드립 커피로 채운다.


드립 커피는 커피의 폴리페놀 성분을 가장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원두의 향기는 약간 그윽하다. 그라인더에 가는 순간 그 향기는 마그마처럼 꿈틀거린다. 진한 향기의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며 후각을 자극한다. 거름종이에 커피가루를 올려놓을 때, 마치 롤러코스터가 정점으로 올라가는 듯한 약간의 긴장감이 돈다. 마침내 뜨거운 물을 조금씩 흘릴 때 커피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폭발한다.


향기는 온 공간을 촘촘히 채운다. 커피 향기로 샤워를 하는 느낌. 잠시 멈춰 선 시간과 이 공간 속에서 똑똑 떨어지는 커피 방울들만이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울들 하나씩 쌓여 조금씩 비커를 채운다. 기다린다거나 견딘다거나 뭐 이런 단어들을 떠올린다. 반복되는 일상이 실은 저 커피 방울들처럼 하나도 똑같지 않음을, 그리하여 드립 커피 한잔을 만들어내며 나는 커피콩이 자랐던 브라질이나 케냐 혹은 스리랑카 어느 커피밭으로 맛여행을 떠났다가 귀환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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