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학교 가고 토요일에 근무하던 시절이 아득한 옛날 얘기처럼 생각된다. 주중의 연속이어서 주말이라는 느낌은 주말의 명화를 볼 때에나 아 이게 주말인가 보다고 여겼다. 한 주의 시작은 월요일이고 일요일은 그저 쉬는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토요 근무와 토요 수업이 사라진 뒤로도 주말이 토요일이고 주초가 일요일이라는 생각은 쉽게 갖지 못했다. 관성의 힘은 꽤 오랫동안 내 인식 세계 속에 자리 잡았다.
문득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 한 주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돌아본다. 나의 세계만큼 타인의 세계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내 인생을 사는데 내 인생에 대한 관심만큼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의문을 가져본다. 세상일을 모르면 바보가 되지만 지나치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는 만큼 내 인생을 가꾸는 데는 소홀히 할 수 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었던 일들을 복기해본다.
바둑은 복기하기 쉬운 게임이다. 그렇지만 지나간 시간을 복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순간들이 그만큼 별로 없었을 수도 있고 여느 때와 같은 일상적인 일들이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계단은 그 분절된 시간들을 떠올리기 쉽게 해 준다. 지나간 걸음은 이미 지나갔고, 다가올 걸음들을 굳이 생각할 필요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 발 딛고 있는 계단만을 응시하다 보면 지나간 시간을 복기한다는 것이 약간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의 순간들이 어찌 운동의 순간과 같을 수 있겠는가?
계단을 오르면 마음 챙김 명상을 할 수 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힘이 들기 때문에 잡다한 생각으로 흐를 가능성이 낮다. 힘들고 땀 내면서 내 몸이 계단에 반응하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 와중에 한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나와 공감하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자기 공감과 자기 돌봄이라는 말은 회복탄력성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나에 대한 집중도는 훨씬 높아졌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나 자책보다는 자긍심과 긍지, 좋은 추억들을 되새기고 아름다운 추억들로 승화시킨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우선은 나를 위해서다. 계단은 일상의 스승 역할을 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이 아닌 성찰을 통해 앞으로 더 나은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에 복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성찰의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고 나와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공존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는 좀 더 나와 타인들을 위해 멋지게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21층에 올라 계단 창밖 먼 산을 바라본다. 공기가 좀 탁하지만, 그래도 멀리 시선을 두면서 잊어야 할 것들은 잊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것들은 기억하리라 생각해본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TV를 없애던 2004년 이후 일요일 아침은 진공상태 그대로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 석 달간은 나만 이런 행복감을 누리고 반대로 아내와 아이들은 불만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고 나자 모두들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TV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각자 할 일들이 생기고 시간을 훨씬 여유 있게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주를 시작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른 오후에 계단을 오르면서 처음으로 일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삶에서 나는 지금 어떤 계단을 오르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향해 가는지 물어본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없다는 것,
고통과 시련만 내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감사할 사람들과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
배운 것들보다 배워야 할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서두름과 느긋함 사이의 균형 지점이 어디 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미운 감정의 찌꺼기들이 여전히 분진처럼 내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하나 둘 생각하며 이번 주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