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방을 구하면서 여러 군데를 다녔는데 마음 한편이 찡했다. 어느 곳은 문들끼리 부딪칠 만큼 촘촘하고 좁은 공간에 방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듯했다. 방도 대부분 좁아서 혼자 겨우 지낼만한 곳들이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고 좁은 면적에 집을 짓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필수적인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젊은 사람들을 위해 혼자 사는 주거공간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이걸 시장에만 맡겨놓아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짐을 대충 정리하고 아이를 위해 뭔가 사주고 싶었는데 시장이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인헌시장은 아담하고 규모는 크지 않지만 넉넉한 인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선, 여느 시장처럼 시장 끝까지 한번 쭉 훑어보았다. 채소가게의 몇 군데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정육점들도 몇 군데 모두 육질이 싱싱하고 가격이 비싸지 않아 보였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처럼 전통시장은 오히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팍팍한 삶에 숨통을 틔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넉넉한 인심과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쌓인 노하우를 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하니 그 존재가 더더욱 빛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이한 곳 두 군데 모두 사람들이 잔뜩 줄 서있다. 마침 저녁 6시가 지나서 끼니때가 되어서이기도 했다. 탕수육과 돈가스를 파는 곳이었는데, 시간만 넉넉하다면 저 줄에 동참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시장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활기차 보여서 왠지 뭔가를 사지 않으면 미안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제일 처음 들른 마트에서 물과 휴지를 샀다. 예전에는 집들이가 흔했던 풍속이었다. 지금은 그게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때 집들이 선물로 늘 사람들은 큰 휴지를 선물했었다.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휴지 브랜드는 앙증맞은 그림의 뽀삐. 참 오랜만에 보는 브랜드였다. 시장에서 만나니 더더욱 반가웠다. 어렸을 적에는 휴지를 트럭이나 리어카에 싣고 판매했었는데 그때부터 보아온 브랜드다.
이번에는 반찬 가게로 향했다. 한 팩에 2,000원, 넉넉한 인심에 다양한 먹거리를 구비해놓은 정성에 감사드린다. 아이 입맛에 맞는 반찬은 많지 않았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나물반찬들은 아직 먼 거리에 있나 보다. 고기와 메추리알 장조림을 하나 사 줬다. 내일 아침 햇반에 다가 반찬을 먹을 딸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집에서 기다리는 막내를 위해 이번에는 닭강정집을 향했다. 닭강정은 6천 원짜리 만 원짜리가 있었는데 중간 맛으로 샀다. 닭강정을 올려놓는 주인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 안쪽에서는 아저씨가 열심히 닭을 튀기고 있었고, 이 앞에서는 닭강정을 양념에 비비고 있었다. 6천 원인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담아 주셨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닭강정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번에는 채소 가게 가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와 바나나와 귤을 샀다 그리고 우리도 저녁 찬거리로 완도에서 올라온 매생이를 샀다 매생이 빛깔이 너무 싱싱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가려는 찰나 두부와 묵이 눈에 들어왔다. 올방개 묵과 메밀묵 빛깔이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다가 묵밥 팩 하나에 3천 원이라 기왕 산김에 검은콩 두부까지 사버렸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해결하면 된다.
장본 물건들을 들여놓고 헤어지려는데 딸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리투아니아 교환학생 간 뒤 폴란드에서 같이 여행 다니고 헤어질 때도 섭섭한 마음에 서로 눈물을 흘리고 헤어졌는데, 오늘은 왠지 그때보다 더 섭섭한 마음이 든다. 시장은 일상적 삶에 자그마한 영감을 제공하는 그런 곳이기도 하고, 이렇게 섭섭한 마음을 위로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본 물건들이 풍기는 냄새가 섭섭한 마음을 지워준다. 앞으로 자주 이 시장을 찾게 될 것 같다. 딸아이가 아마도 나중에는 전혀 섭섭하지 않아 할 것 같은 표정을 상상해본다.
여태까지 먹어본 묵밥 중 단연 최고다. 살얼음이 낀 국물은 차갑게 시원했고, 구수한 맛의 시원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메밀묵은 아늑하게 입안을 감싸 안고 목으로 넘어간다. 마치 메밀 나라의 메밀 궁전에 초대받아 제대로 대접받고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다. 검은콩 두부는 고소함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김치와 잘 어울린다. 섭섭한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음 주에 다른 핑계를 대서 그 시장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