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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0. 2024

5년 만의 여행 - 마쓰야마 #1

처음 혼슈의 도쿄를 방문한 게 2007년, 규슈는 2008년, 홋카이도는 2012년, 이제 또 하나의 섬인 시코쿠의 마쓰야마를 2024년에 방문하게 된다. 빈도로 보면 규슈의 후쿠오카를 가장 많이 방문했다. 마쓰오 교수와의 인연이 가장 크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초에 칭다오를 다녀오고, 그해 말에 비엔나를 다녀오는 동안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처음 사태의 심각함이 확산되는 동안, 매년초 해외로 여행을 가던 계획을 수정하여 국내로 방향을 돌렸으나, 여의치 않은 상태로 세월이 지나갔다. 그 사이 안타깝게도 매년초 해외여행을 함께했던 멤버 한 분이 세상을 떠나는 슬픈 일이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멤버와 새롭게 출발하는 여행. 여섯 명의 멤버 모두 건강하게 매년초 해외여행을 앞으로 수십 년 같이 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비행기 타는 일이 공포스러웠던 시절이 이제야 지나갔다. 1995년 신혼여행으로 태국 갈 때부터 시작된 공포는 제주출장을 갈 때도 지속되었다. 일단 비행기만 타면 내릴 때까지 극한의 공포심을 느꼈다. 물론 그 공포심은 순전히 내가 만들어낸 창작품이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안 좋은 기분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정한 빈도 이상으로 여행을 다니게 되어서 그 공포심은 이제 사라졌다. 따라서 그 전날 잠을 설치는 일도 없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행기 타기 전에 장을 비우는 일인데, 아침부터 스피닝 바이크를 70 분타니 저절로 해결되었다. 이제부터는 비트주스와 커피 한 잔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겠다. 오토파지를 잘 실행해서 마쓰야마에 도착 후 먹는 저녁식사의 효용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도 나름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면 바로 거기서 삶의 만족감과 의미를 길러 올릴 수 있다.


공항으로 가는 방법으로 오래간만에 공항버스를 선택했다. 2023년 3월 바르셀로나로 출장 가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좌석을 예약하지 않아 탈 수 없다고 해서 부랴부랴 차를 끌고 공항으로 간 적이 있다. 버스 타고라는 앱을 깔고 좌석을 예약해 둔 덕에 편안히 공항으로 향한다. 1시간 30분의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했다. 

<영포에버>는 마크 하이먼이라는 기능의학자가 쓴 책으로 몰입도가 굉장히 좋고, 핵심적인 키워드 추출도 훌륭하고 각각의 키워드에 대한 설명도 난도가 높지 않으면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주제에 관해 이 사람이 얼마나 노력해왔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읽었던 몸 관련 의학서적들은 가독성이 높지 않았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이 책은 손쉽게 읽히고 핵심개념은 뇌리에 잘 박힌다. 뿐만 아니라 몸의 전체 생태계를 한 번에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 가독성을 높이는 음악!! 브람스의 교향곡 2번, 세이지 오자와의 지휘. 곧이어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교향곡 4번을 듣는 동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평생 같이 갈 멤버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조우한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 동료를 떠나보낸 허전한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공항은 비교적 한산하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니 11시 10분이다. 예전 같으면 김치가락국수를 맛있게 먹었을 텐데 이 공복감이 너무 좋다. 그렐린 호르몬이 분비되며, (그렐린은 주로 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욕을 증가시키고, 음식 섭취를 유도한다. 식전에 높아지고 식후 감소한다.) 위에서 꾸르륵하는 소리가 너무 좋다. 자주 간헐적 단식을 하다 보니 이제는 견딜만하다. 탄수화물은 탄수화물을 지속적으로 부른다. 그래야 공복감과 허기짐이 해소된다. 렙틴 호르몬의 활약을 유지하는 지금의 이 공복감이 너무 좋다. (렙틴은 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렙틴 저항성은 렙틴의 신호가 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함) 식당은 사람들이 많아 앉을자리를 찾지 못했다. 눈썰미 있는 멤버 덕분에 여섯 자리를 잡아 같이 앉았다. 스텔라 아르투아를 한 잔씩 잡았다. 맥주맛은 감미롭다. 맥주가 맛있는 것은 다음이고 5년 만에 같이 해외여행을 하게 된 들뜬 마음과 서로를 향한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이 맥주잔에 녹아서 달콤하다. 벌컥 마시지 않고 그 맛을 조금씩 음미한다. 벌컥 마시는 것은 마쓰야마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가만 이번에도 지난 1년간 차곡차곡 모은 돈을 때려먹는 분위기!!


제주항공은 베트남과 일본을 다니며 이용해 봤는데, 기내음식을 주는 것 말고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저가항공과 고가항공의 구분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유럽으로 가는 LOT항공이나 FINAIR도 따지고 보면 저가항공에 속하지 않나? 안전하게 데려다주면 그만이다. 먹는 것에 대해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선별적으로 몸에 맞는 것을 습관 들이기 시작한 것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물 한 모금 안 받아도 좋다. 발아래로 시코쿠 섬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평온하고 편안하며 즐거운 시간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의 느낌을 잘 간직하고 그걸 잊지 말고 그 알아차림을 계속 갖고 다니면 이곳에서의 2박 3일이 엄청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쓰야마는 우레시노와 같은 소도시다. 공항에서 내려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일행들과 ’ 생맥주‘를 한 잔 하러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한 잔을 마시러 갔는데 자판기의 천국인 일본 답게 자동으로 내려주는 기계에 500엔을 넣으니, 술잔을 기울여 따라주고 나중에 별도로 거품을 얹어준다. 사람이 따를 때와 달리 양이 야박하다. 물론 아사히 슈퍼 드라이 생맥주는 맛있었지만 어쩐지 기계를 거쳐 나온 거라 익숙하지 않고, 맛도 약간 떨어진다. 숙소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는 한국사람으로 꽉 찼다. 매일 제주항공에서 마쓰야마를 운행한다고 한다. 마쓰야마를 상징하는 감귤과 여우의 캐릭터가 앙증맞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능력,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더불어 숙소로 가는 길에 일본과 우리가 다른 점 중 하나가 대도시와 중소도시 혹은 수도권과 지방의 편차가 크지 않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럽다. 내 고향 태백은 모든 산업들이 정리되고, 공무원에 의해 경제가 돌아가는 빈약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숙소는 아담하고 예쁘다. 저 멀리 마쓰야마 성이 보인다. 마지막날 알게 되었지만, 마쓰야마 성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주변지형이 험난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어 갔을 것으로 상상해 본다. 맨 앞열에서 성을 공격하던 사람들은 뒤에서 진격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돌진하도록 하기 위해 장수들은 얼마나 감언이설과 협박을 늘어놓았을까 ….

2층에서 체크인을 진행하는데 여기도 자동으로 체크인, 체크아웃을 하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암울한 미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기계가 일을 하고 사람들은 고급 노동과 여가를 즐기는 풍족한 삶을 살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소 암울하고 미래 세대를 생각하면 그 암울함은 더 커진다. 1시간 30분 정도 자유시간 동안 대욕장인 온천을 하러 갔다. 일본은 자연온천의 천국이다. 우레시노의 온천, 홋카이도의 온천, 오사카와 도쿄의 온천, 벳푸의 온천 기억이 덩굴째 올라온다. 가장 신났던 순간은 가고시마의 검은 모래해변이다. 뜨거운 검은 모래를 삽으로 퍼서 몸 위에 올려놓는 온열요법으로 30분을 진행했는데, 몸속 노폐물이 완전히 빠져나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오늘 온천은 그와 비길바는 아니지만, 잠시 잠깐 여행의 피로를 살짝 내려놓을 만큼은 된다. 그리고 최근 공부하고 있는 호메로시스의 개념에 따라, 찬 물을 온몸에 끼얹었다. 몸이 각성되는 느낌이 든다.

첫날은 현직 회장님이 쏜다고 했다. 나도 예전에 몇 번 쏜 적이 있다. 이제 후배님들이 쏜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이 밀려온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생맥주를 주문한다. 작은 잔이 600엔, 큰 잔이 900엔이라 큰 잔으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크다. 1000cc가 조금 못 되는 양이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나마 비루는 맛있었다. 라거 중에서도 약간 깊은 맛이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산토리가 진하고 아사히는 중간이며 기린맥주는 가볍게 느껴진다. 2007년 도쿄로 출장 가서 들렀던 브라질 요리전문점에서는 두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으며 아사히 생맥주를 그냥 마실 수 있었다. 잔뜩 먹겠다고 했지만, 딱 두 잔을 마시고 취해버렸다. 겨우 한 잔을 더 마셨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 진한 맛이 여기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맥주 수면 위로 올라온다.

고기도 맛있었지만, 소금과 기름을 뿌려 담백하면서 짭짤한 양배추가 일품이었다. 최근 아내가 비트 주스에 양배추를 갈어넣어줬는데,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양배추도 달달하다. 고기는 비싼 집이라 그런지 아주 맛있었다. 2019년 칭다오를 다녀온 뒤 5년 만에 같이 신년초 해외여행을 왔으나, 할 얘기도 많다. 무엇보다 이 멤버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사람들의 집합이라 그게 정말 좋다. 맛있는 생맥주와 고기, 그리고 웃음꽃이 시간 가는 걸 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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