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Mar 09. 2024

제주 돌문어 완벽 디자인

몇 날 며칠을 기대했던 삼치회집이 공교롭게 휴무였다. 삼치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여럿 있지만, 왠지 처음 삼치회 맛을 알려준 곳만 가게 된다.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맛을 보고 실망을 하면, 삼치회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질까 봐. 여러 사람이 모인 행사자리에서의 만찬은 예상했던 대로 별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많지 않다. 처음부터 다른 곳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으므로, 별로 내키지 않았다. 호텔 근처에서 여럿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마침내 한 군데 발견했는데, 바로 호텔 안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나는 매우 신뢰한다. 가진 것들이 많지만 자꾸 다른 곳을 쳐다보기 때문에 사소한 행복을 즐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주 왔던 호텔이지만 이런 곳을 제대로 관찰하고 발견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과 비도 오고 날씨가 꿀꿀한데 밖으로 나가지 않아 괜찮겠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기본 반찬으로 딱 한 가지를 내어 주었다. 물김치 몇 조각이 다였는데 담아놓은 모양에 신경 쓴 것도 그렇고 물김치를 담고 있는 그릇도 예사롭지 않다. 나름 도자기에 대한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라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니 그릇의 빛깔과 유약의 발림 정도와 적당한 온도에서 구워낸 부드러운 선이 매력적이고, 빛깔과 자태가 우아했다. 특히 화려하게 반짝이지 않는 투명한 느낌이 손길을 부른다. 백김치는 적당히 익어서 입안 수백개의 미각수용체들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백색의 깨끗하면서도 순수하고 시원한 맛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가 나에게 팡 터뜨려주는 느낌 !!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터러 여기서 이미 게임 끝 !!

돌문어 튀김은 시그니처 메뉴라고 소개하는데, 순간 지배인의 얼굴을 쳐다보니 자신만만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믿음이 가는 모습에 왠지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음식은 얼굴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음식의 얼굴은 주방에서 디자인된다. 신선한 식재료를 다루는 솜씨, 오랜 세월 식재료를 다룬 노하우, 거기에 식재료들을 적절하게 배열해서 맛도 맛이지만 보기에 좋게 하는 디자인은 사실 쉽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음식의 얼굴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돌문어 튀김의 나온 모양새가 단순하면서도 우아하다. 절묘한 색깔의 배합과 그릇의 선명한 붉은색과의 조화도 너무 보기 좋다. 붉은 색은 의외로 튀지 않고 돌문어와 한라봉을 잘 감싸안고 있다.


돌문어에 얇은 튀김옷, 말려서 구워낸 한라봉 슬라이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약간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쫄깃했다. 문어가 살던 심해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 심해의 역동성을 한라봉의 단 맛이 살포시 감싸고 있어서 완전히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튀김에서는 기름맛이 감지되지 않았다. 튀긴 뒤 기름을 완전히 빼버렸다. 주방에서 이 예술작품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 깊이 전달된다. 식재료를 다룰 때 완전히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것이 되었을 때 그의 계획과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재능이 묻은 손길이 작동되었을 것이다. 먹을 사람이 이 맛을 즐길 상황을 그려보면서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만들었을 것이다. 입안 가득 그의 정성스러운 손놀림이 빚어낸 작품을 감상한다.


돌문어 튀김을 담고 있는 그릇의 붉은색이 눈을 즐겁게 한다. 궁금해서 지배인에게 출처를 물어보니 일본에서 사 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곳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궁금하다. 분명히 아리타에서 샀을 것이나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삿포로 생맥주는 이 작품 감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조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옅은 깊이의 맛이 과하지 않은 탄산기운과 함께 입안을 적신다.

2012년 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삿포로의 맥주공장에서 먹던 맛을 살짝 떠올려보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추억을 먹는 것이다. 한 잔의 맥주와 돌문어 튀김이 만들어준 아지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눈이 많이 내리던 태백 고향집 바로 앞 텃밭에 눈으로 집을 만들고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느꼈던 아늑함이 소환된다. 아지트는 고정된 장소에 머물지 않고 내가 어디를 가든 거기가 아지트라 생각하고 내 마음을 담으면 그게 아지트가 된다. 내 발길 닿는 곳 어디나, 내 마음 머무는 곳 어디나, 내가 맛을 느끼는 음식은 그 무엇이나 다 아지트다.

한우와 스지 구이 역시 기대를 뛰어넘는 맛을 선사했다. 대파(대파를 식재료로 다루는 세계의 모든 요리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루기 쉽지 않은 식재료이되 입안 가득 대지의 맛을 선사한다)와 양배추, 숙주를 밑에 깔고 그 위에 한우와 스지 구이를 올려놓았다. 방금 세팅해서 지글지글한 소리로 미각을 자극한다. 대파와 양배추, 숙주와 스지 한 점을 세팅한 후 입안에 올려놓았다. 식재료들이 각기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는 이 느긋한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린다. 제주 해산물로 만든 나베 요리는 압권이었다. 시원한 국물맛은 기본이고 각종 채소와 버섯 등이 곤한 몸을 위로하고 또 위로해 준다. 뒤늦게 합류한 멤버들이 계산의 스트레스를 날려줘서 감사한 마음 오래오래 간직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맑고 시원한 순댓국 한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