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개입하지 않았는데 굴러간다!
정보 우위의 상실
예전 팀장의 권위는 "내가 더 많이 안다"는 데서 나왔다. 신입사원은 모르는 것을 팀장에게 물었고, 팀장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그 노하우가 곧 정답이었다. 지금의 신입사원은 다르다. 생성형 AI를 능숙하게 사용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정리된 답을 순식간에 찾아낸다. 팀장이 30년 경력으로 쌓아온 노하우는 AI가 제시하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회의 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팀장이 "내 경험상 1안이 나을 것 같아요"라고 하면, 팀원은 슬쩍 스마트폰을 확인한 뒤 "찾아보니까 2안이 더 효율적이라고 하는데요?"라고 반문한다. 팀장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전무님이 1안이 좋다고 하셨으니 방향에 맞춰야죠."라며 조직의 생리에 기대어 순간의 불편함을 모면한다.
20년 전,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의 팀장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굴림체 같은 오래된 폰트에 알록달록 색깔을 입힌 파워포인트 뭉치. "이건 내가 10년 동안 모은 거야"라며 뿌듯하게 꺼내 보여주던 슬라이드였다. 어떤 분은 낡은 수첩에 빼곡히 적어둔 노하우 목록을 품고 다녔다. 그것들은 마법의 지팡이 같았다. 지금 그 파워포인트를 꺼내면 어떨까? 촌스럽다. 폰트도, 색깔도, 내용도. 팀원들은 속으로 웃을 것이다. 마법이 사라진 지팡이는 그냥 나무 막대기다. 꺼내면 민망할 뿐이다.
중간자의 한계
팀장에게는 팀에 대한 100%의 책임이 있으나, 권한은 50% 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팀 실적이 떨어졌다. 임원이 묻는다. "왜 이렇게 되었어요?" 팀장이 답해야 한다. 그런데 실적이 떨어진 진짜 이유는 개발팀 일정이 밀렸거나, 경쟁사가 가격을 낮췄거나, 경기가 나빠서 고객사의 예산이 줄었을 수 있다. 이 중 팀장이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도 책임은 져야 한다.
반대로 팀 성과가 좋았다면, 그 성과는 마케팅팀의 대박 캠페인 덕분이거나, 시장 상황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팀장의 기여분을 정확히 산정하기는 어렵다. 이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팀장은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고, 진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팀장이 직접 뛰는 것이 아니라, 팀이 스스로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팀장의 역할은 실제로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아니라, 권한 행사의 완충장치에 가깝다. 월요일 아침, 임원 회의에서 "상반기 매출 20% 상향 조정"이라는 목표가 내려온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실을 나선다. 그리고 팀 회의에서 이 목표를 전달한다. 그 순간 팀원들의 표정이 굳는다. "팀장님, 지금 인원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케팅팀 협조를 얻을 수 있을까요?" 팀장은 양쪽의 말이 모두 맞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들어줄 수 없다.
조직이 수평화되면서 팀장의 결정권은 줄었다. 예전에는 팀장이 "이렇게 해"라고 하면 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프로젝트 하나에 3개 부서가 얽히고, 각 부서의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팀장은 결단을 내리는 역할보다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요구를 재해석하고 감정을 완화하는 중간자가 되어버렸다.
"팀장이 되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되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많은 팀장들이 하는 말이다. 원인은 팀장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구조가 원래 그런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력감에서 빠져나오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플레잉 코치라는 역할의 딜레마
전통적인 관리자는 실무를 하지 않고 팀원의 성과만 관리했었다. 그래서 관리자라는 표현이 적합했다. 그러나 지금은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통합하는 것이 성과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방향 아래, 많은 기업들이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고 있다. 리더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제시되는 리더상으로서 플레잉 코치(Playing Coach)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많다.
엔씨소프트 Assessment팀에서 역량평가와 성과평가를 담당하던 시절, 리더상을 설정하고 그와 연계된 리더십 진단과 리더십 교육을 설계해야 했다. 이때 기획자에게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시대가 원하는 보편적인 리더상이 플레잉 코치였다. 엔씨는 플레잉 코치를 리더상으로 채택했다. LG에서도 그랬고, SK에서 처음 마주한 리더상도 역시 플레잉 코치였다.
플레잉 코치는 경기장 밖에서 지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뛰면서 몸소 보여주고 지도하는 존재다. 매우 이상적이고 멋진 리더의 모습이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팀 전체의 일을 파악하여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에는 팀장 스스로가 너무 바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팀원이 팀장을 거치지 않고 임원과 직접 소통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팀장은 최종 의사결정자는 아니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의사결정은 해야 하고, 실무자는 아니면서 현장을 잘 알아야 한다. 관리와 실무 어느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것이 현시대 팀장의 현실이다.
권력의 역설: 올라갈수록 의존적이다
팀장이 되면 권력이 커지고 주도적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올라갈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팀원은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팀장은 팀원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임원은 팀장들의 성과에 의존하고, CEO는 모든 구성원의 성과에 의존하는 것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리고 팀장과 상위 임원과의 관계는 팀원과 팀장 간의 위계보다 더욱 강하다. 이로 인해, 팀장에게는 Leadership보다 Followership이 더 요구된다. 결국 팀장은 위아래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다. 위로는 임원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아래로는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팀원은 내려갈 곳이 없지만, 팀장은 내려갈 곳이 있다. 따라서, 팀장은 복종적이다. 일반 직원이 실패하면 기껏해야 인사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팀장이 실패하면 팀장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고, 리더십 실패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러한 두려움이 팀장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든다.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하고, 혁신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한다. 임원의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팀원의 행복보다 임원의 기대를 우선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팀장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일까? 역설적으로 이 무력함을 인정할 때, 오히려 힘이 생긴다. 동양 철학의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처럼,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팀장이 힘을 뺀다는 것은 곧 권한을 잃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뒤따른다. 개입을 줄이고 권한을 위임하려 해도, 스스로 결정할 자신감과 용기가 없다면 중간에서 흔들리기 쉽다. 외부 환경이 변하면 더욱 불안해지고, 위임했던 권한을 다시 회수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힘을 뺐다가 조직 내 입지마저 잃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은 많은 팀장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두려움 때문에 움켜쥐고 있던 권한을 용기를 내어 내려놓을 때 팀은 더 강해질 수 있다. 팀장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할수록 구성원은 스스로의 영향력을 잃고 무기력해지지만,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권한을 위임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학습된 무기력을 거꾸로 적용해 보자. 팀원들이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팀장이 개입을 줄이고 팀원에게 권한을 위임하면,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의미 있다고 느끼고 주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어차피 팀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인식은 체념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먼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팀원의 성격, 회사의 정책, 시장의 변화 등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조건 내에서 최선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통제 가능한 작은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환경 설계’의 일부분이다. 팀의 문화, 의사소통 방식, 업무 프로세스, 협업 구조 등 팀원들이 일하는 구조를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것이다. 또한, 팔로워십을 전략적 무기로 활용해야 한다. 경영층의 기대를 팀원들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팀의 목표와 연결시킨다. 동시에 팀원들의 의견을 임원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상향 전달하는 채널이 된다.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어차피 팀장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비관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해방의 선언으로 읽으면 어떨까? 팀장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서, 팀이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팀장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