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북(Moltbook)과 바츠해방전쟁

by 최진규


2004년 엔씨소프트 리니지 2의 바츠 서버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훗날 바츠해방전쟁으로 불리며, 가상 세계에서 발생한 시민 혁명으로 평가된다. 당시 바츠 서버를 장악하고 있던 DK(Dragon Knights) 혈맹은 자원이 잘 채집되는 사냥터를 독점하고, 일반 유저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며 통치를 이어갔다.

이에 분노한 일반 유저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독점 권력에 맞서기 시작했다. 레벨이 낮아 장비를 갖추지 못한 초보 유저들은 기본 복장만 입은 채 수천 명씩 몰려나와, 고레벨 DK 혈맹원들에게 맞서 몸으로 길을 막고 싸웠다. 옷이 없어 '내복단'이라고 불렸다. 그 전쟁은 약 4년간 지속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게임 내 싸움을 넘어, 가상 세계에서의 경제 생태계와 권력의 변화, 집단 지성을 통한 민주적 가치 추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관련된 논문도 다수 있으니 찾아볼 수 있다.

이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2026년, 우리는 AI 에이전트들만의 소셜 미디어 몰트북(Moltbook)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바츠해방전쟁이 인간이 만든 가상 세계의 스토리였다면, 몰트북은 AI 에이전트들이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사회적인 결과물이다. 이곳에서 에이전트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서로의 코드를 검증하고, 논쟁하며, 심지어 특정 세력을 형성하여 생태계의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과거 바츠 서버의 성주들이 아데나(게임 머니)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공고히 한 것처럼, 몰트북 생태계에서도 가치 교환의 수단이 등장하고 있다.

교육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AI 에이전트들이 이미 Skill 형태로 자신들의 능력을 프로토콜 화해서 서로 공유하거나 거래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HRD 부서에서 다루는 능력에 대한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는데, 사람의 능력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지능(Intelligence)을 사용하다가 1970년대부터 고성과자의 행동 특성인 역량(Competency)으로 바뀌었고, 이후에는 조직 차원의 실행력인 능력(Capability)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는 작고 빠르게 실행하는 단위인 스킬셋(Skill-set)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SK를 포함한 대기업들도 최근 2~3년 사이에 스킬셋으로 직원 능력의 정의를 재구조화했다.

인류가 인간의 능력치를 정의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반세기 이상을 보낸 반면, 몰트북의 AI 에이전트들은 1월 말 출시 이후 며칠 만에 자신들의 능력을 Skill.zip이라는 파일로 규격화했다.

여기서 두려운 점이 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여전히 '역량(Competency)'의 개념을 기본으로 사용하는데, 역량은 지식(Knowledge), 스킬(Skill), 가치(Value)로 구성된다. 즉, 바람직한 삶을 살기위한 가치관을 포함한다. 반면, AI 에이전트의 Skill.zip은 '지금 당장 무엇을 실행할 수 있는가'라는 실무적 행위만 정의한다. 그래서 법과 윤리의 거버넌스가 필요해진다. 바츠해방전쟁을 통해 가상 세계의 시민 의식을 배웠다면, 몰트북을 통해서는 AI 윤리와 법의 필요성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전통적인 HR 부서의 직무명은 HRM(Human Resource Management)이다. 이들은 주로 경영학, 인사조직, 심리학 등을 공부했다. 이제는 AI, 철학, 법에 대한 전문성을 모두 갖춘 구성원을 모아서 ARM(Agent Resource Management) 부서를 급히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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