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팀을 잘 이끌고 있는 걸까?
팀장이 조직을 이끌다 보면 문득 이런 고민이 들 때가 있다. 팀원에게 자유를 줘야 할까, 아니면 섬세하게 개입해야 할까, 지금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으면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반대로 너무 깊게 개입하면 팀원들이 주도성을 잃는 건 아닐까, 개입하면 팀원들은 눈치를 보고, 개입하지 않으면 혼돈의 상태가 될 것만 같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고민을 하는 팀장을 위한 이야기다.
나는 두 번 팀장이 되었고, 두 번 모두 실패했다.
LG전자 TV 소프트웨어 개발자, LG연수원 인재육성담당자, SW역량강화센터 교육 컨설턴트, 엔씨소프트 교육팀장, 인사평가팀장, SK AX 리더십개발팀과 핵심인재육성 그리고 대외교육사업까지, 겉보기엔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총 세 번의 팀장 제안을 받아 두 번 팀장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상황을 견디지 못했거나, 만족하지 못해 스스로 내려왔다. 나는 실패한 팀장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팀장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개입하지 않는 법’을 아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초고성과는 관리자의 개입이 없을 때 탄생했다.
SK주식회사 AX의 교육사업팀은 원래 사내 리더십 교육을 담당하던 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션이 바뀌었다. 대외 교육사업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정부 공고를 분석해 사업을 기획하고 계획서를 완성해야 하는 시간은 단 2개월. 게다가 기존의 사내 교육 행정 업무 부담이 컸기에 신규 사업 기획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담당 임원의 선택이었다. 전통적인 리더십 이론에 따르면, 위기 상황의 리더는 세밀하게 개입하고 직접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임원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팀의 목표를 '북극성'이라 명명하고, 그 북극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내가 담당하던 전사 교육 행정 업무의 절반은 폐지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타 부서로 이관되었다. 나는 ‘제거’의 전략이 교육사업 첫해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획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기획은 '제거'하는 기획이다. 현존하는 모든 업무와 프로세스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발의되고, 승인을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것들이다. 제거한다는 것은 곧 이해관계의 충돌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거에는 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팀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견인했다. 그는 구성원의 업무 방식이나 진행 상황에 대해 먼저 묻지 않았다. 아니, 궁금함을 참고 견뎌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개입은 단순한 방임이 아니었다. 팀원들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고, 도움을 요청하면 마치 막내 사원처럼 발 벗고 나섰다. 명령하는 상사가 아닌, 파트너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팀은 정부 교육사업 승인을 받아냈고, 'SKALA(SK AI Leader Academy)'라는 취업 준비생 대상 국비교육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그리고 중소·중견기업 대상의 'SK AX 상생아카데미' 사업은 대부분의 경쟁 기업이 탈락한 가운데 우수한 점수로 선정되었다. 모든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었고,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의 보도자료에 우수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어떻게 이토록 짧은 기간에 팀을 구축하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엔씨소프트가 PC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를 론칭하기 위해서는 보통 7~8년간 약 800억 원을 투입해야 했다. 그런데 모바일 프로세서의 성능과 네트워크 속도의 향상에 힘입어 모바일 게임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PC게임유저는 점차 모바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춰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을 제작해야 했다. PC 온라인 게임의 종가가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마치 7~8년 동안 차근차근 의사결정받으며 항공모함을 제작하던 회사가 몇 주마다 다양한 고객 맞춤형 요트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과 같았다. 기존의 개발 문화와 프로세스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엔씨소프트의 교육 담당 조직인 NC University의 팀장으로서 나는 기민하게 게임을 개발하는 경험과 자극을 부여하기 위해 ‘NC Game Jam’이라는 행사를 기획했다. 게임기획자,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사운드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신청을 통해 팀을 구성하고, 개발목표와 46시간의 자유를 부여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15개 팀이 모두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행사 종료 후 결과물을 리뷰한 CTO는 그중 4개는 조금만 보완하면 출시가 가능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그토록 몰입했을까?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과 집중력은 왜 평소에는 발휘하지 못했던 것일까?
LG전자에서는 매년 전사 최상위 수준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선발해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교육 및 인증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교육과정에는 2개월간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팀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퀴 달린 로봇을 무선으로 제어하며, 비전 센서를 이용해 경로를 탐색하여 트랙을 최대한 많이 완주하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의 운영 방식이었다. 한국의 대기업 문화에서는 흔히 세밀한 계획과 단계별 점검, 꼼꼼한 진행 관리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카네기멜론대학교 프로젝트에서는 달랐다. 교수들은 소프트웨어공학 차원에서 올바른 개발 방법론만 제공하고, 결과는 오롯이 팀이 만들어내야 했다.
두 달간의 자유가 만든 결과는 놀라웠다. LG전자 개발자들은 소프트웨어공학의 메카인 카네기멜론 소프트웨어연구소 대학원생 팀보다 두 배 더 많은 횟수를 성공하며 현지 교수진을 놀라게 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확인해 보니, 그들은 정해진 트랙을 따라가는 대신 단축 경로를 찾아 트랙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알고리즘을 구현했다. 개발 요구사항에는 트랙을 완주하라고 명시되어 있었을 뿐 반드시 트랙을 따라가야 한다는 제약은 없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배터리 잔량에 따라 바퀴의 구동력을 조절하고, 로봇이 벽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반발력까지 보정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이는 단순히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게임의 룰을 재정의하는 접근이었다. 한국에서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을 할 때에는 왜 이러한 도발적 도전과 창의가 발휘되지 못했던 것일까?
앞서 언급한 사례 들에서 볼 수 있듯, 고성과를 넘어선 초고성과는 역설적이게도 팀원보다 팀장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거나, 팀장이 일일이 관리할 여력이 부족했거나, 팀장의 참을성이 뛰어나서 개입하지 않은 순간에 탄생했다. 그렇다면 팀장은 팀원을 그냥 방치해야 하는 것인가?
팀장의 역할은 오직 가치의 울타리를 세우는 것
팀장은 마치 목동과 같다. 초원에 풀어놓은 양들이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양들은 신선한 풀을 뜯기 위해 어디까지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미지의 영역에 늑대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알 수 없다. 목동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나아가 강력한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이 울타리를 넘으면 늑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그 경계만 넘지 않는다면 진정한 안전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양에게 알려줘야 한다. 양을 보호하는 울타리는 한편으로는 양의 활동을 제약하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강력한 통제선이 모두의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복잡한 규칙보다 단순하고 강력한 원칙이 사람을 움직인다.
일과 삶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성인에게 이 최소한의 가치 기준을 정하는 것 외에, 팀장의 개입은 결국 잔소리일 뿐이다. 울타리는 신중하게, 때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정하는 일은 집착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엄정하고 철저해야 한다. 반면 그 경계 안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개입하지 않는 것이 곧 효과적인 개입전략
인본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본래부터 자기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강제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의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기결정이론에서도 개인이 외부적 보상이나 압력에 의해 통제되기보다는 스스로의 선택과 자발성에 따른 내재적 동기가 극대화될 때 최상의 성장과 성과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외부의 불필요한 간섭이나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개인의 내재적 동기를 저하시킬 수 있고, 잘 계획된 무개입이 효과적인 개입 전략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앞서 말했던 ‘무개입’은 리더가 손을 놓고 팀원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개입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나는 이것을 전략적 무개입 또는 전략적 방임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조직의 비전과 개인의 성장을 연결하기
둘째, 절대 넘어서는 안 될 가치의 통제선을 만들기
셋째, 통제선 안에서는 방임이라고 느낄 만큼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기
나는 이 원칙을 실제 조직에서 적용하며 작은 사회 실험과 관찰을 반복하고 있다.
이 책은 성공한 리더가 확신에 차 써 내려간 자기계발서도, 학자의 깊이 있는 이론서도 아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실천가의 기록이며, 기존 리더십 개념을 비트는 도발일 수 있다. 현실의 리더십은 어떻게 무너지고, 무엇이 탁월한 성과를 만드는지를 거칠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 책이 필요한 팀장들
나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은 팀장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통적인 이론을 많이 공부한 팀장, 성과에 대해 조급함을 느끼는 팀장, 본인보다 뛰어난 팀원을 둔 팀장, 몇몇 팀원과의 관계가 불편한 팀장,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팀장.
우리는 각자의 환경에서 저마다의 경험을 쌓으며 살아간다. 이 책에 담긴 개똥철학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동의를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전략적 무개입에 대해 일부분이라도 공감하고 실천한다면, 어느새 당신은 개입하지 않고 성과를 내는 팀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당신은 비로소 진짜 리더가 된 것이다.
최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