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노력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팀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날
“축하합니다, 팀장님!”
승진 발표 날, 축하 메시지가 쏟아진다. 회사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뿌듯함,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가슴을 채운다. 하지만 팀장 승진에는 조직의 잔혹한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당신이 팀장이 된 이유는 맡은 직무를 가장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실무 역량과 빛나는 성과가 당신을 이 자리로 이끌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역설이 시작된다.
조직은 가장 유능한 실무자를 잃고, 가장 미숙한 팀장을 얻는다.
최고의 실무자에서 최악의 팀장으로
LG전자 TV 개발자로 2년을 일하며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내 개발 능력의 한계였고, 다른 하나는 개발자를 성장시키는 일에 대한 열정이었다. 20대 후반, 나는 과감히 연수원 사내공모에 지원했다. 운 좋게도 합격했고, 20대의 개발자가 본사 연수원의 교육 담당자가 되는 일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LG전자 글로벌 소프트웨어 인재육성 총괄기관인 SW College에서 나는 신입 개발자부터 임원까지, 전 계층의 역량모델과 육성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연수원에서 시작해 SW센터, CTO HR팀, 생산기술원을 거치며 조직의 규모와 역할을 확대해 나갔다. 당시 CEO였던 구본준 부회장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출신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분이었다. 그의 비전 아래 LG전자를 제조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대전환이 시작되었고, SW College는 그 중심에 있었다.
11년간 쌓은 이 경험은 나를 인재 시장에서의 가치를 높여 주었다. 다수의 대기업으로부터 제안을 받던 중 차장 1년 차였던 나는 엔씨소프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존중하는 기업문화에 매료되어 한 달간의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했다. 11년의 경험과 신뢰를 연봉 인상과 팀장 직책으로 맞바꾼 것이다.
판교에서 시작한 교육팀장 생활은 처음엔 순조로웠다. LG전자라는 거대 조직(직원 83,000명, 매출 59조)에서 쌓은 경험을 당시 엔씨소프트(직원 2,500명, 매출 8,300억)에 적용했다. 글로벌 범위에서 수행했던 다양한 일들 중 실패했거나 미흡했던 내용은 보완하고 성공했던 사례를 중심으로 적용했다.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중요 행사에서는 마이크를 잡았으며, 팀원의 문서 하나하나에 내 기준을 적용했다.
2년간은 무난해 보였다. 그러나 팀이 성장하고 업무가 복잡해지면서 균열이 시작되었다. 팀장 업무와 실무를 동시에 수행하다 만성 과로에 시달렸다. 내가 실무자 시절 해냈던 업무량과 품질을 팀원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했다. 내 기준과 방식이 ‘훌륭한 직업정신’으로 포장되어 팀원들을 압박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를 영입했던 상사가 퇴직하고 새 상사와의 갈등까지 겹쳤다. 이직 4년 차, 나는 스스로 팀장직을 내려놓았다. 엔씨소프트 교육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겠다는 진심은 실무자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음 앞에 무너졌다. ‘팀이란 무엇인가? 팀장이란 무엇인가?’ 진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피터의 법칙: 유능함의 종착역
교육학자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피터의 법칙에서 조직의 불편한 진실을 언급했다.
“계층적 조직에서 모든 구성원은 결국 자신의 무능력 수준까지 승진한다.”
유능한 직원은 승진한다. 새 직책에서도 유능하면 또 승진한다. 이 과정은 더 이상 유능하지 못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반복된다.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이 무능해지는 자리에서 멈춘다. 개발자든, 마케터든, 영업이든 마찬가지다. 전문 분야의 고성과자는 팀장이 된다. 그런데 팀장이 되는 순간,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뀐다. 전문 역량에서 관리 역량으로, 개인플레이에서 팀 조율로, 실무 완성도에서 소통과 동기유발로, 논리적 사고에서 감성 지능으로 전환된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은 214개 기업의 53,035명의 승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직무 성과가 높을수록 승진 후 성과는 오히려 하락했다. 특히 개인 성과가 뛰어난 사람이 관리직으로 올라갔을 때 이 현상은 극명했다. 실무 성과와 관리 성과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역의 관계를 보였다.
인시아드(INSEAD)의 추적 연구에서는 관리자로 승진한 이들의 평균 적응 기간은 12~18개월. 60%만이 성공적으로 적응했고, 25%는 부분 적응, 15%는 완전히 실패했다. 기술직에서 관리직으로 전환한 경우는 더 심각했다. 평균 20개월이 걸렸고 실패율은 25%에 달했다.
내가 그랬듯, 실패하는 팀장들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정체성 혼란이다. 신임 팀장은 여전히 자신을 관리자가 아닌 전문가로 인식한다. “나는 팀장인가, 아직도 전문가인가?”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전문성으로는 인정받지만 리더십으로는 의심받는다. 관리자적 판단과 전문가적 직관이 충돌한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부하가 된 관계는 어색하기만 하다. 나 역시 그랬다. 팀원보다 뛰어난 전문성을 유지하는 것이 팀장의 의무라고 믿었다. 은연중에 “역시 팀장님이 직접 하시니 다르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실무 집착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개입한다. 전문성은 이내 마이크로매니징으로 변질된다. 모든 결정이 팀장을 거쳐야 하는 병목현상이 일상이 된다. 도전적 과제는 팀장이 독점하고, 팀원에게는 단순 업무만 남는다. 결국 팀장은 관리와 실무를 동시에 떠안다가 번아웃에 빠진다. 실무를 놓는 순간 불안이 엄습한다. “내가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하지?” 그래서 더욱 실무에 매달린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세 번째는 역할인식 부족이다. 많은 신임 팀장이 관리라는 행위를 부가 업무로 여긴다. 비전 제시, 팀 빌딩, 성과관리 같은 리더십 기능은 뒷전이다. 실무적 현안 해결이 여전히 최우선이다. 전통적으로 팀장의 역할은 일 관리, 사람 관리, 조직 관리로 구성된다. 하지만 대부분 일 관리에만 매달린다. 당장의 성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2년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 조직을 방치한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팀원의 이탈, 협업의 붕괴, 방향성의 상실. 그때서야 깨닫는다. 너무 늦었다는 것을.
일에서 손을 놓을 때 비로소 잡히는 것들
당신을 팀장으로 만들어준 그 빛나는 역량이 이제는 당신의 성공을 가로막는다. 과거의 무기(武器)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 무기(無器)가 되었다. 팀장은 완전히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
실패 후에야 깨달았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할 때 실패한다면, 답은 그 반대편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개입하지 않는 것, 통제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리더십이 된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전략적 무개입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통제를 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팀원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팀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 역시 그런 함정에 빠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