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당신의 진심(眞心)은 망심(妄心)

1장. 노력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팀

by 최진규


당신의 진심이 팀을 망치는 헛된 마음이 될 때


“당신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에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 얘기를 꺼냅니다.”


신임 팀장이 된 후, 나는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팀원의 부족한 점을 개선시키려는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고, 진심으로 그들이 더 나은 전문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왜 팀원들은 진심 어린 조언을 받고도 표정이 밝지 않았을까?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일이 있다. 주니어 팀원이 작성한 플랫폼 개발업체 선정 보고서를 검토하던 날이었다. 나는 그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30분 이상 꼼꼼히 피드백했다. 오후에 진행될 주간 직책자 미팅 준비가 미흡해지는 상황까지 무릅쓰고 시간을 할애했으니, 팀원의 성장에 대한 나의 진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협력사 평가 기준이나 리스크 관리 방안 같은 핵심 내용뿐만 아니라, 정보 시각화나 표현법까지 세세하게 지도했다.


“아이디어를 상징하기 위해 메모장 모양의 아이콘을 쓰셨는데,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보고서를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콘을 꼭 넣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넣는다면,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보편적 이미지는 메모장보다는 전구예요.”


“대외로 나가는 문서는 우리 회사와 우리 팀의 실력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제가 꼼꼼하게 확인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중요하다고 강조하려는 문장을 볼드체에 빨간색에 밑줄까지 긋게 되면 삼중 강조가 됩니다. 강조는 한 번만 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이런 식으로 문서의 모든 페이지를 함께 넘기며 수정 사항을 짚어주었다. 심지어 시간 날 때 읽어보라며 정보 시각화 관련 책까지 사비로 구매해 건넸다. 팀원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팀장이라고 스스로 자부했다


“팀장님이 정말 신경 써주시는구나”라는 감사의 말을 기대했지만, 훗날 내게 돌아온 건 어색한 침묵뿐이었다. 더 충격적인 일은 한 달 후에 벌어졌다. 조직 개편으로 그 팀원이 옆 팀으로 배치되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밝아진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옆 팀장은 내가 보기에는 무책임했다. 팀원들과 밝게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좋지만, 진지한 자세로 성장을 위한 조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괜찮네, 잘하고 있어”라는 가벼운 격려만 던질 뿐이었다. 그런데 그 팀원은 확실히 더 행복해 보였다. 솔직히 배가 아팠다. 내가 문제였나? 진심을 다해 코칭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몇 달 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찾아왔다. 더 이상 직속 상하 관계가 아니게 된 그 팀원과 나는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과거 우리 팀은 퇴근 이후 각자의 삶을 살자는 취지로 함께 저녁을 먹지 않았고, 회식을 하더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하곤 했는데 그 팀원이 퇴근 이후 치맥까지 하자고 제안하면서 과거보다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한 업무 상황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관계가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성장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고 적정한 거리를 두니 관계가 더 좋아진 것이다.


“팀장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그 부분, 이제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좋았지만, 동시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왜 그때는 통하지 않았던 말이 지금은 통하는 걸까?


그제야 깨달았다. 내 조언에는 부족한 점을 고치라는 내용보다 잘했던 점을 더 부각하라는 메시지가 많아졌다. 물론 어차피 내 팀원이 아니기 때문에 개선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리고 목표 지향적인 달성 기준을 강요하지 않았고, 내가 직접 타인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욕심도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팀원은 옆 팀에서 나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물론 그가 만든 문서를 보면 여전히 내 기준에는 맞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성과는 과거보다 좋아졌고, 무엇보다 나와 일할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과도하게 개입했던 나의 노력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내 팀원이었을 때 긍정적인 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배정하고 소통을 했다면 어땠을까 후회가 된다.


부정이 긍정보다 5배 강력한 이유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부정적 경험이 긍정적 경험보다 심리적 영향력이 평균 5배 이상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Bad is stronger than Good”이라는 그의 연구는 인간 뇌의 진화적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다. 생존을 위해 위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한 우리의 뇌는 부정적 정보를 더 깊이, 더 오래 처리한다.


직장에서 상사의 한 번의 비판적 피드백이 주는 심리적 타격을 회복하려면 다섯 번 이상의 칭찬이 필요하다. 나의 진심 어린 30분 피드백은 사실 팀원에게는 30분의 비판이었고, 이를 상쇄하려면 150분의 칭찬이 필요했던 셈이다.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무의식적 폭력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비단 그 팀원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다른 팀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나는 문서 곳곳을 빨간펜으로 도배하며 30분씩 진심 어린 피드백을 쏟아냈다. 올바른 형식이 무엇인지, 논리 구조가 왜 잘못됐는지, 참고해야 할 이론은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했다.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했고, 보고서는 즉시 개선되었다. 단기적으로는 성공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 팀원들은 기획서를 작성할 때마다 먼저 나에게 “이런 형식이 맞나요?”라고 확인을 구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색깔은 사라졌고, 창의적인 시도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갤럽(Gallup)의 연구는 내가 겪은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관리자가 직원의 약점에 집중할 때, 적극적으로 업무에 참여하는 직원의 비율은 단 9%에 불과했다. 더 충격적인 건 관리자가 직원을 완전히 무시할 때의 참여도가 2%라는 점이다. 약점에 집중하는 것이 무관심보다 겨우 7% 포인트 나은 수준에 그친 것이다. 반면 관리자가 직원의 강점에 집중했을 때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적극적 참여도가 무려 73%까지 치솟았다. 약점 중심 접근의 8배가 넘는 효과였다. 갤럽은 이를 ‘강점 혁명(Strengths Revolution)’이라 명명하며, 전통적인 성과관리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점에 집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칭찬을 남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개인이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탁월함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약점을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쏟는 에너지로 강점을 월드클래스 수준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 메시지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의 정체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정말 팀원을 위하고 있었을까? 정신분석학은 우리가 자신의 불안과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투사한다고 설명한다.


완벽주의 성향의 팀장인 나는 팀원의 사소한 실수에도 과민반응했다. 그것은 내 안의 완벽하지 못한 나에 대한 불안이 팀원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한 나는 팀원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내 불안을 달래려 했다.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내 불안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팀장에게 팀은 확장된 자아다. 팀원의 성공은 곧 나의 성공이고, 팀원의 실패는 나의 실패이다. 팀원의 실수는 곧 나의 상처이므로, 상처를 치유하려는 욕구가 과도한 통제와 간섭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진심의 의도는 상처받은 내 자아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였다.


내 열정적인 코칭의 이면에는 유능한 팀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팀원의 존경과 감사를 받고 싶은 욕망, 팀 성과를 잘 받아 승진하고 싶은 욕망, 장악력을 갖고 싶은 욕망이 얽혀 있었던 것 같다. 불교 철학은 이런 마음을 망심(妄心)이라 부른다. 진심(眞心)의 반대 개념으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헛된 마음이다. 겉으로는 선한 의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집착에서 나온 것이다. 망심의 진짜 문제는 상대방이 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한다는 점이다. 입으로는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팀원은 그 이면의 의도를 느낀다. 표면적 메시지와 실제 의도가 충돌할 때, 팀원은 혼란과 불안에 빠진다. 감사해야 할 것 같지만 불편하고, 거부하고 싶지만 죄책감이 든다. 이런 감정적 혼란은 학습을 방해하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진정한 피드백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르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상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동양 철학의 ‘무위(無爲)’가 바로 이것이다. 억지로 하지 않되, 하지 않음이 없는 것. 개입하지 않되, 필요한 모든 것이 저절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신입사원에게는 기초적인 업무 지도와 명확한 지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아 스스로 학습하고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단계에 이른 팀원이라면 접근을 달리해야 한다. 정답을 전달하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잘못됐어”를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로 바꾸는 것. “이렇게 해야 해”를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로 전환하는 것. 답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진정한 코칭이고, 전략적 무개입의 핵심이다.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팀원을 진정으로 신뢰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실수를 통해 배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며, 나와 다른 방식으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전략적 무개입의 시작이자, 진정한 리더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렇게 통제를 내려놓고 신뢰를 선택했지만,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다.


내가 정말 제대로 알고 이러고 있는 걸까?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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