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노력하면 할수록 망가지는 팀
의외로 많은 직장인들은 본인이 직접 수행한 경험이 아닌, 조직 내에서 타인이 수행한 경험 또는 관리만 했던 일에 대해 ‘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간접 경험을 통해 습득한 정보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래 네 명의 팀장 이야기를 통해 왜곡된 ‘앎’의 유형을 살펴보자.
왜곡된 ‘앎’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는 간접 지식에 갇힌 유형이다.
C사의 김 팀장은 S대 출신이고 손꼽히는 독서가이자 지식인이다. 그의 책상에는 최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맥킨지 쿼털리가 정갈하게 놓여 있고, 회의 시간마다 그는 업무의 본질적 의미와 시장의 흐름도 막힘없이 풀어낸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지식이 오로지 머릿속 공간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AI 분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임보디드 AI(Embodied AI, 신체를 가진 인공지능)’의 논의와 유사하다. 수조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언어모델이라 할지라도 물리적인 몸을 이용하여 커피 한 잔을 내릴 수 없다면 그 지식은 허상에 불과하다. 역량이 단순히 지식의 조합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될 수 있듯, 리더십 또한 물리적 실체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김 팀장의 한계도 여기에 있다. 이론은 풍부하지만, 고객의 표정을 읽고, 솔루션을 직접 만들고, 협력사와의 미묘한 긴장을 관리하고, 팀원의 동기를 유발하는 실질적인 역량이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실패한 과거에 갇힌 유형이다.
K사의 조 팀장은 공채로 입사해 25년간 스태프 업무를 두루 경험한 베테랑이다. 그의 업무 폴더에는 모든 프로젝트의 기록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오면, 그는 순식간에 과거의 유사 기획서를 찾아내 보여주곤 한다.
“2005년에 이미 시도했던 거야. 임원 바뀌고 나서 중단됐지.”
“2018년 지식공유 플랫폼과 뭐가 다른데? 그때도 만들었는데 참여율이 저조했어. 문화적인 문제라서 장담하건대 이번에도 안 될 거야.”
“2023년에 비슷한 서비스 출시했었다가 작년에 서비스 종료했어. 마케팅을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각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 당시 시장 상황, 심지어 담당자 이름까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과거의 실패는 곧 미래의 불가능’이라는 등식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주니어 팀원이 조직문화 관점에서의 변화관리 방안을 제안했을 때도 그는 즉각 반대한다. 과거에 다양한 방식으로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해보았던 경험이 오히려 미래를 보는 눈을 가려버린 것이다.
세 번째, 규정에 갇힌 유형이다.
C사의 운영총괄 정 팀장은 아이비리그 로스쿨을 졸업하고 글로벌 법무법인에서 경력을 쌓은 엘리트이다. 그에게 세상은 법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단 두 가지로만 구분되는 듯하다. 어느 날, 전사 임직원을 위한 역량 개발 체계 보고에서 정 팀장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안경을 벗으며 말한다.
“근로기준법에서 언급하는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 기업이 개인의 역량 개발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학습이 필요하다면 퇴근 후 자비를 들여 공부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자기 계발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회사가 학습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며 교육을 과도하게 제공하는 것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 없다. 오히려 회사가 직원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전제가 과연 타당한지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 씁쓸하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직원에게 불리하게 운영하는 것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직원과 함께 성장하려는 것은 천지 차이다. 정 팀장은 전자를 택한다.
마지막은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유형이다.
G사의 박 팀장은 앞의 세 사람과는 정반대이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조직은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단가가 낮고, 소비량이 많지 않은 제품이어서 매출은 크지 않지만, 기업의 기술력을 대외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사업부다. 그런데도 전사 확대 적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저희는 아직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 의견을 더 들어보고 차근차근 고민해야 합니다.”
겸손일까, 태만일까? 표면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해 보인다. 그는 끊임없이 외부 컨설턴트를 초빙하고, 자문을 구한다. 하지만 그의 조직이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는 글로벌 수준이다. 오히려 초빙된 컨설턴트들이 미팅이 끝난 후 조심스럽게 묻기도 한다. “혹시 개발 프로세스 자료를 참고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오히려 배우러 온 것이다.
이런 과도한 겸손은 또 다른 형태의 앎의 오류다. 자신이 진짜 아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책임 회피일 수도 있고, 자신감 부족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우 의사결정은 계속 지연되고 팀원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부족한가 보다”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기도 한다. 조직의 독립적 판단력과 실행력이 서서히 무너져간다.
‘앎’에도 단계가 있다.
네 명의 팀장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는 앎에 대한 메타인지가 부족하다. 교육심리학자 벤자민 블룸(Benjamin Bloom)은 인지 영역을 6단계로 분류하며 이 문제의 본질을 드러냈다. 기업에서 자주 언급하는 ‘애자일’이라는 단어로 예를 들어보자.
가장 낮은 단계인 기억하기(Remembering)는 단순히 정보를 암기하는 수준이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은 2001년경 알려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해하기(Understanding)는 의미를 파악하는 단계다. “애자일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개발 방식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적용하기(Applying)부터는 실천의 영역이다. 실제 프로젝트에 스크럼(SCRUM, 애자일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의 한 유형)을 도입하고, 스프린트(Sprint, 약 2주 단위로 설정되는 짧고 규칙적인 개발 주기)를 운영하며, 데일리 스탠드업(Daily Stand-up, 팀원들이 매일 짧은 시간 동안 서서 진행하는 회의)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분석하기(Analyzing)는 더 높은 수준이다. 왜 우리 팀의 스프린트가 실패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평가하기(Evaluating)는 판단의 영역이다. 애자일이 우리 조직에 적합한지, 워터폴(Waterfall, 분석-설계-개발-테스트 단계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전통적 개발 방법론)과 비교했을 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마지막 창조하기(Creating)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단계다. 우리 조직만의 하이브리드 개발 방법론을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위 두 단계, 즉 기억과 이해 수준에 머물면서도 자신이 최상위 단계에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C사의 김 팀장처럼 이론을 완벽히 ‘이해’하면서도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 K사의 조 팀장처럼 과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메타인지: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웠던 이유
그렇다면 이 착각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크라테스가 이미 답을 제시했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권위 있는 신전에서 그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했다. 의아했던 소크라테스는 당대의 현자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정치가들은 정치를 안다고 했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시인들은 영감을 안다고 했지만 아름다움의 본질을 말하지 못했다. 장인들은 기술을 안다고 했지만 그 기술의 가치를 설명하지 못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이다. ‘인지에 대한 인지’, 즉 자신의 사고 과정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능력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다.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은 잘 모르는 내용을 타인에게 질문하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학습을 한다. 반대로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모른다. 피드백을 거부하고,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리며, 결국 성장의 기회를 놓친다. 앞서 본 C사의 김 팀장이 실행력 부족을 인정하지 않고, K사의 조 팀장이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이다.
팀장에게 메타인지는 중요하다. 팀의 비전을 얼마나 명확히 이해하고, 팀원 개개인의 역량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팀장으로서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십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