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쿄의 한 호텔 객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옆에는 고등학생 딸이 누워 하루 종일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다.
딸은 옷을 사러 갈 때도, 맛집을 찾아갈 때도, 심지어 가고 싶은 해외여행조차 나와 가자고 제안한다. 와이프가 사업으로 주 7일을 일하고, 아빠 엄마가 예전처럼 죽고 못사는 사이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걸까. 딸의 제안으로 작년엔 오사카와 대만, 그리고 지금은 도쿄에 단둘이 여행을 하고 있다.
우리 부녀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도 서로 인사를 안 할 정도로 무뚝뚝한 사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관계가 가능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할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그냥 내버려 뒀어요"
내 주변의 많은 부모들은 털털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내버려 뒀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부, 여가, 식생활 등 크고 작은 결정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대개 부모 중 한 명이 개입하면, 다른 한 명이 풀어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둘 다 일이 바쁜 탓도 있었지만) 전략적 방임의 철학을 실행했다.
첫째, 학습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겼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아이의 시험, 숙제, 수행평가에 단 한 번도 관여하지 않았다. 결과가 나쁘면 창피함을 느끼는 것도, 결과가 좋으면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온전히 아이의 몫이었다.
솔직히 말해 타고난 기억력과 언어 감각에 비해 성적이 탁월하지는 않다. 단기적으로 분명 손해를 봤다. 하지만 그게 이 전략의 실패라기보다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정기적인 용돈을 주고 경제관념을 부여했다.
월 20만원을 정기 이체하고, 식사, 학원비, 교재비는 실비로 지급한다. 지금 이 여행에서도 음식값을 제외하고, 딸이 구매하는 모든 것은 내가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셋째, 생활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아침엔 떡이나 과일 정도만 준비해 뒀다. 배고프면 집에 있는 재료 또는 배달 플랫폼을 활용하여 스스로 해결하게 했다. 작은 불편이 쌓여야 자기 관리의 감각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넷째, 위험을 무릅쓰고 디지털 기기에 자유를 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엔 키즈폰, 3학년부터 스마트폰을 쥐어줬다. 게임이나 유튜브에 어떤 제한도 걸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이미 배틀그라운드를 하며 성인들을 상대했다. 통제하는 대신 선택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반복하게 했다.
이러한 육아 방식의 대가로 예상보다 낮은 학업성적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탁월한 주도성은, 시키는 대로 공부해서 성적이 탁월한 사람보다,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취를 할 수 있고, 더 많이 행복할 거라 믿는다.
팀 관리도 다르지 않다.
팀장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되, 구성원이 과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인내하고 지켜봐야 한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팀장 밑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다.
자기결정이론은 인간은 자율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내재적 동기가 생기고,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줘야 한다.
방금 고개를 돌려 옆의 딸을 보다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녀가 무뚝뚝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뭐어!?"
그녀는 내가 쳐다봐도 잔소리를 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녀가 안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그냥 그렇게 자신 앞에 놓인 일에 충실할 뿐이다.
이 아이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어쩌면 내가 먼저 그녀의 손을 놓아줬기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