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의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by 최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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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토마스 에디슨을 발명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된 특허가 1,093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발명가이기 전에 탁월한 관리자였다.


1876년 뉴저지 멘로파크에 세워진 에디슨의 연구소는 각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 25명을 모아서 운영하는 산업 연구소였다. 과학기술 실용화를 위한 민간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이곳은 에디슨의 연구실이 아닌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협업 공간이었다. 찰스 배첼러(Charles Batchelor)는 영국 출신의 기계공학 전문가로 에디슨의 오른팔이었다. 프랜시스 업튼(Francis Upton)은 물리학자로서 전구에 필요한 저항과 전류의 수학적 관계를 계산했다. 존 크루시(John Kruesi)는 스위스 출신의 정밀 기계 전문가로서 에디슨의 아이디어를 실제 기계로 구현했다. 그리고 루드비히 뵘(Ludwig Böhm)은 유리 세공의 대가로서 전구의 진공 유리관을 제작했다.


특히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했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과는 다른 교류 전기 시스템을 추구했다. 비록 둘은 나중에 갈라섰지만, 에디슨은 처음에는 테슬라의 재능을 인정하고 고용했다. 에디슨이 한 일은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각자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었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3,000가지가 넘는 필라멘트 재료를 실험했다. 그러나 모든 실험을 직접 한 것은 아니었다. 각 전문가가 동시에 실험을 진행했고, 에디슨은 그 결과를 종합하고 다음 방향을 제시했다.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땀”이라는 에디슨의 말은 사실 팀 전체의 노력을 의미했을 것이다.


지금 나의 팀에도 업튼이 있고, 배첼러가 있고, 나와 방향이 다른 테슬라가 있을지 모른다. 팀장의 역할은 이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에디슨의 최고의 발명품은, 최고의 발명품을 발명할 수 있는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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