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찢고 다시 싸매는 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그날, 사람들 가장자리에서만 살아온 나병 환자가 한 사람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몸보다 시선에 더 많이 상처 입어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하신다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지보다, 자신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를 묻는 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피하지 않았고, 조건도 달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접촉 하나로, 병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그를 둘러싸고 있던 경계였습니다.

같은 날, 전혀 다른 자리에 있던 한 권력자도 그를 찾았습니다. 군인을 거느리고 명령에 익숙한 백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요청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통받는 종을 대신한 부탁이었습니다. 그는 직접 와줄 필요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권위란, 가까이 있어야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한 사람은 가장 높은 자리에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둘 다 같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얻었습니다. 자격을 내세우지 않았고,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믿었습니다. 이 만남이, 이 말이, 삶을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회복이란, 사람에게 붙여졌던 이름을 한 번 찢어내고 다시, 더 조심스럽게 싸매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8 : 1~13 예수님이 감동하신 믿음의 고백)


멀쩡한 피부를 날카로운 칼로 찢습니다. 새빨간 핏물이 흐르고, 새파란 비명이 울려 퍼집니다. 샛노란 고름이 터져 나오고, 새하얀 거즈로 닦아냅니다.

"거의 다 끝나가요. 조금만 더 참아볼게요."

아파하는 환자를 안심시키면서 거즈를 꾹 눌러 고여 있는 액체를 전부 끄집어냅니다. 더 이상 나오는 게 없다 싶을 때쯤 실과 바늘을 꺼냅니다. 눈을 크게 떠야 겨우 보일 듯한 피부 안쪽을 기구로 움켜쥐고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고 거침없이 꿰맵니다. 가지런히 일렬로 줄지어선 매듭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숨을 고릅니다.

상처를 째고 다시 꿰매야 하는 환자들은 하루에도 여러 명입니다. 체육시간에 친구와 운동하다가 이마가 찢어진 아이부터 추운 겨울 빙판에서 넘어져 다리가 찢어진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구분이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다치고 아플 수 있습니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나병 환자는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유대인이었고, 자신의 몸에 병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백 부장은 권력자였지만, 다른 지역 사람이었고, 자신이 아닌 종의 몸에 병이 있었지만, 그 종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둘 모두 바라보는 대상은 같았습니다. 바로 능력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 병이 낫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안과 밖이 허물어졌고, 정결과 부정이 뒤집어졌습니다. 혈통과 신분의 질서가 넘어졌고,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들의 존재가, 영혼이 온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찢는 일은 아픕니다. 환자들이 비명을 지를 때면 제 마음도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싸매야겠습니다. 미천한 제 손 끝에서 감히 회복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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