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해 본 사람만 불쌍해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그날, 앞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길을 따라 소리를 내며 걸어왔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그들을 피해 지나갔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로 방향을 잡으며 따라왔습니다. 결국 한 집 안으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한 남자가 물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믿느냐고요.

그 질문에는 조건도 설명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오래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의 얼굴이 바뀌었고, 눈보다 먼저 표정이 열렸습니다. 세상이 갑자기 친절해진 건 아니었지만, 더 이상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데려와졌습니다. 오래도록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각자 이유를 붙여왔지만, 그날 그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번졌습니다. 누군가는 처음 보는 일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반응은 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놀라워했고, 어떤 이들은 이유를 따져 묻기 시작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 앞에서 사람들은 보통 둘 중 하나를 택합니다. 받아들이거나, 설명으로 거리를 두거나. 사건보다 사람의 태도가 먼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녔습니다. 도시와 마을을 가리지 않았고, 문제의 크기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길을 잃은 얼굴들 앞에서는 오래 멈췄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많은데, 함께 손을 내밀 사람은 많지 않다고요. 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을 향한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9 : 27~38 깊은 긍휼을 소유한 일꾼이 필요합니다)



기적을 보고도 기적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서늘한 바람, 싱그러운 녹음 그리고 아리따운 길가의 꽃들까지. 어디에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입니다. 아무 의미 없이 시작된 듯한 하루가, 오직 나를 위해 오늘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비로소 무언가가 시작됩니다. 저는 종종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엽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걷지 못하는 사람, 아픈 사람, 말 못 할 사정으로 마음이 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었고,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어색했으며 한쪽 눈은 감은 채 말투는 어눌했습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아니, 누구나 살다가 한 번쯤 불쌍한 사람이 되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이게 되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게 되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씻은 듯이 낫게 해달라고 애써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삶은 종종 그다음 자리를 가리킵니다. 한번 불쌍해져 본 사람에게, 이제는 다른 사람 사정도 보라고 말하는 자리입니다.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의 결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되는 자리 말입니다.

제게 그때 그 사고는 선물로 변했습니다. 불쌍한 사람이 되어본 덕에 환자들에게 눈이 갔고, 당연하게 흘려보냈을 하루 대신, 기적 같은 오늘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게 찾아온 이 하루를, 이 마음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작은 욕심도 생겼습니다.

이기적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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