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땐 가더라도, 평안을 빌어주는 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어떤 사람은 어디를 가든 최선을 다합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받으려 애씁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표정 앞에서도 말을 이어가고, 분위기가 어색해져도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떠나는 건 패배처럼 느껴지고, 남아 있는 건 성실함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이런 방식을 내려놓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먼저 인사를 건네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엽니다. 분위기가 풀리면 그 자리에 머뭅니다. 대화가 오가고, 웃음이 생기고, 서로가 편안해질 때까지요. 그런데 반대로, 말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오면 억지로 버티지 않습니다. 이유를 따지지도 않고, 상대를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떠납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정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을 존중했고, 떠나는 자신도 소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것은 설득의 잔재가 아니라, 평온한 여운이었습니다. 마치 “여기까지면 충분하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제야 그는 깨닫습니다. 머문다는 건 끝까지 버티는 일이 아니라, 환대받는 자리에서 숨을 고르는 일이라는 것을. 떠난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마음이 닳기 전에 자신을 거두는 선택이라는 것을요.

모든 곳에 남아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떤 자리는 머물 만하고, 어떤 자리는 지나쳐도 됩니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든 평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게 된다면, 미련 없이 발걸음을 떼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10 : 1~15 거저 받아 거저 나누는 제자의 사명)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불편한 물집 때문에 양 발바닥이 아려옵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농구 유니폼이 세탁 바구니에 반쯤 걸쳐 있습니다. 대학생 때는 쉴 새 없이 뛰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몸을 조금 사릴 필요가 있나 봅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합니다. 버스를 타고 두어 정거장 지나 지하철 환승역까지 걷습니다.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맞은편에서 한 아주머니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폰을 보며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역 안은 붐볐고, 그 아주머니는 그대로 저와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아유, 미안해요."

전광판에서는 제가 탈 지하철이 곧 들어온다는 안내가 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하필이면 근육통으로 불편하던 허벅지와 팔꿈치를 세게 부딪혔고, 저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괜찮습니다."하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굳이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지하철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는 제 뒤통수 쪽에서 날 선 목소리가 날아왔습니다.

"야! 인마! 어린놈의 새끼가...."

뒤돌아보니 개찰구 앞에서 그 아주머니가 저를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과를 무시한 채 찡그린 얼굴로 떠났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순간 억울하고 불쾌했습니다. 분명 부딪힌 쪽은 저였는데, 아침부터 욕을 먹고 저주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마침 귀에는 잔잔한 찬양이 흐르고 있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노래를 들으며 서 있는 제 모습이 조금 우스워 보이기도,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을 품을 수는 없다는 것. 대신, 적어도 내 마음의 평안만큼은 지키라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야 다시 평안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평안을 빌어주는 것으로, 내 몫은 거기까지인 셈입니다. 제가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찝찝합니다. 그러나, 발걸음은 옮겨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를 위해 조용히 기도합니다.

비록 나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상하셨더라도, 남은 하루만큼은 평안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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