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쥔 손을 놓을 때, 흐르기 시작하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그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에서도 큰 마찰 없이 지내는 법을 알았습니다. 웬만하면 맞춰주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관계를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비교적 평온해 보였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질문이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도 마음은 점점 비어 가는지, 왜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늘 자신이 뒤로 밀리는지 말입니다. 누구를 선택하든 누군가를 실망시키게 되는 순간이 오자,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모든 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은 없다는 것을요.

그때 그는 아주 불편한 선택을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기대와, 오랫동안 지켜온 안정적인 자리와, 스스로 옳다고 믿게 된 방향 중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그 선택은 칼처럼 날카로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을 긋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대신 삶은 조금 단순해졌습니다.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선택은 거창한 영웅담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하루는 더 작아졌습니다. 말없이 곁에 앉아주는 일, 손이 모자란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는 일, 굳이 생색내지 않아도 되는 선택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준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삶은 갈라지지만 동시에 또렷해진다는 것을. 모든 것을 지키려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삶보다, 몇 가지를 내려놓고도 끝까지 붙들고 싶은 방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방향은 늘 거창한 말이 아니라, 가장 작은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을요.

(마태복음 10 : 34~42 제자의 길에서 잃는 것과 얻는 것)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 입에 짠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감칠맛으로 느껴지고, 내 입에 밍밍한 음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담백하게 느껴지듯, 사람마다 입맛은 제각각입니다. 음식의 맛도 이렇게 다른데, 사람을 향한 마음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계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때는 믿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길이 최선이라고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나누고, 이 세상에 괜찮은 흔적을 남기는 것. 더 나아가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상처를 받았습니다. 누군가의 모진 말에, 날 선 시선에, 거친 행동에 다치고 말았습니다. 애써 상처를 싸매고 새 살을 덧대 보아도, 상처는 계속 날아왔고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 욕심이 과했다는 것을, 애초에 내 안에는 모든 사람을 품을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기울어진 세상에서 나 혼자 중심을 잡으려 했다는 것을요.

어느 날, 불어온 세월의 바람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옳은 길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려놓는 만큼 선명해지고, 집중하는 만큼 반짝이는 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로 늘 붐비는 소문난 맛집이 아니더라도, 한 번 맛본 뒤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되는 단골이 있는 가게처럼 말입니다.

어딘가로 전부 새어 나갈까 봐 힘껏 움켜쥐고 있었는데, 손의 힘을 푸는 순간 흘러가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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