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연습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by 이진규

사람이 말문을 열고, 보지 못하던 눈이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되자 모두가 술렁였습니다. 분명 놀라운 일이었고, 누군가는 오래 기억할 만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변화 자체보다, 그 일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감탄 대신 의심이 먼저 나왔고, 기쁨보다 해석이 앞섰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습니다.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의 말은 점점 날카로워졌습니다. 누군가는 선을 나누는 대신 편을 가르려 했고, 설명하려다 오히려 더 큰 갈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조용히 말합니다. 스스로 갈라진 집은 오래 서 있을 수 없다고. 무엇을 보고 있느냐보다, 어디에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요.

문제는 기적을 보느냐 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 이유는, 이미 마음속에 쌓여 있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쌓인 것이 불신이면 말은 공격이 되고, 마음에 쌓인 것이 두려움이면 말은 변명이 됩니다. 말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던 것이 흘러나올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적보다 말을 이야기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말의 뿌리가 되는 마음을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보다, 그 결과를 바라보는 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그 일을 두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느냐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어려운 기적은, 눈이 열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방향을 잡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일을 보고도 여전히 분열을 선택할 수 있고,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묵묵히 사람을 살리는 말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 앞에서 내가 어떤 말을 쌓아 왔는지입니다.

(마태복음 12 : 22~37 종말의 심판과 연결되는 일상의 언어)


요 근래 부쩍 살이 찐 것 같습니다. 헐렁하던 바지가 딱 들어맞고, 거울에 비친 양 볼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고백하건대, 대학원에 입학하고 전보다 덜 움직이고, 잘 먹어 왔습니다. 혼자 진료실을 지키고 앉아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늘 음식이 함께했습니다. 다이어트 시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껏 먹어왔던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소고기 스테이크부터 삼겹살 구이, 올리브 오일 파스타, 치킨과 피자, 샌드위치까지. 음식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천천히 빛을 잃어갑니다. 맛있는 음식들이 하나 같이 기름기 가득한 열량 저장소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혈당이 오르내릴 때 찾아오는 졸음과, 몸이 둔해지는 감각을 느낄 때면 더욱 실감합니다. 몸에 좋은 것을 담아둬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들어가는 것이 나오는 것을 결정합니다. 들어온 것들은 한 겹 한 겹 천천히 쌓여 그 사람의 형태를 만들고 남은 것들은 조심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몸도, 마음도 그렇습니다. 먹는 것은 몸에 쌓이지만,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에 쌓입니다.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힘차게 움직일 수 있듯, 마음에 좋은 것을 담아야 말과 태도에도 온기가 배어 나옵니다. 더욱이, 무엇을 담아왔는지가 결국 마음의 색이 됩니다. 저는 건강한 몸만큼이나, 선한 마음이 좋습니다.

다이어트는 먹는 것이 80, 운동이 20이라고들 합니다. 빼는 것보다 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쁜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눈앞에서 지글대는 삼겹살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대신 좋은 것을 선택하는 일은, 적어도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는 얼마든지 선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둘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다이어트는 몸무게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마음에 무엇을 들이는지를 가려내는 연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습니다. 건강한 몸, 아니 마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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