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한 여자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먼 도시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찾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이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했고, 어머니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불편해했고, 어떤 이는 그냥 돌려보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원래 너를 위해 온 사람이 아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차갑게 느껴질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한마디만 더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전부가 아니라, 남은 부스러기라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는 억지가 아니라 간절함이 있었고, 권리가 아니라 신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네 믿음이 크다.” 그리고 아이는 회복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적보다도 한 사람의 태도를 기억하게 합니다.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함을 신뢰하는 마음. 때로는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사랑을 붙드는 것이 더 큰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15 : 21~28 주님의 테스트를 통과한 믿음)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습니다. 또, 보이는 것을 본다고 믿고, 들리는 것을 안다고 확신합니다. 확인하지 않아도 믿고, 경험하지 않아도 단정합니다. 실제 세상이 어떠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해석한 세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꽤 고단합니다. 넘치는 듯하면서도 늘 부족하고, 건강한 듯하다가도 쉽게 아픕니다. 나 혼자 불편하면 그나마 견딜 만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자녀가 아프면 마음이 서서히 썩어 들어갑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내 속이 녹아내리는 경험과도 같습니다. 내가 만든 세계라 여겼지만, 그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집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더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쌓아 올린 경험과 지식, 능력과 권리를 잠시 내려두고, 새로운 자리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내 안에서는 풀리지 않던 문제가 어느새 밖에서부터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잔뜩 추켜올린 어깨의 힘을 풀고, 움츠린 몸을 천천히 펴며,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일입니다. 내가 알든 모르든 이미 흘러오고 있던 그 바람, 내 존재와 상관없이 흐르던 그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억지로 힘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리로 물러나는 일입니다.
자존심 대신 신뢰를, 욕심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