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드러내서 강해지기
"난 요즘 가면을 쓰고 살았거든."
내 친구 A는 대형 로펌 변호사다. 3년 만에 연락이 닿은 A가 "나는 로스쿨 마치고 지금 법무법인 ○○에서 일하고 있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A가 부러웠다. '변호사'라는 직함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성공의 증거. 성공한 사람은 실패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됐다.
평일 저녁 7시 강남역 퓨전 음식점에서 A를 만났다. A는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웃으며 나를 반겼다. 밝았다. 그래서 곧 A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적잖이 놀랐다.
"사람들은 날 그냥 법무법인 ○○ 변호사로 알지만, 사실 난 ○○ 안에서 핵심이 아닌 부서에 있어. 핵심 부서에 있는 변호사들은 우리를 ○○ 변호사로 취급하지도 않아."
A는 자기를 '법무법인 ○○ 변호사'라고 부르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자기의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다니는 남자친구에게도 자기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말하고 나니 너무 좋다."
A가 나에게 이러한 어려움을 말하게 된 건 내가 털어놓은 나의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뒤였다.
"난 □□일보사 기자이지만 핵심이 아닌 팀에 있어. 핵심에 있는 기자들은 우리한테 □□일보사 기자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도 해. 경제학과 동기들이 회계사가 되고 증권사에 입사해 돈 많이 버는 걸 지켜보면서도 내가 기자를 하고 싶었던 건, 자본을 굴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매일 주식 기사만 쓰고 있다니... 내가 세상에 필요 없는 일을 넘어서 해가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내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변호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을 위해 의견서를 기계적으로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것. 변호사 업계는 첫 직장이 중요하거든. 내가 이 법인에 들어온 게 내 성장을 돕기는커녕 나의 미래에 악영향을 주는 것 같아."
"나도 같은 마음이야. 이 회사에서 내가 쓰고 있는 기사들이 이직할 때 디딤돌이 아니라 내 무능력의 증거가 될 것 같아서 힘들더라."
나에게는 성공한 사람의 표본이었던 A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내가 A를 그렇게 여겼듯, 누군가는 나를 잘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 줄까.
A와 나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겉으론 남부럽지 않은 회사의 일원이라는 점,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낮은 '계급'에 속해있다는 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 현재의 직장에 들어온 것이 자기의 미래를 더 좁고 어둡게 만들었다고 믿는 점.
나는 나같이 모자란 사람이 잘 되면 좋겠다. 그래서 어느 더운 날에 다른 사람보다 A에게 먼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보냈고, 변호사를 취재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A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