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우울증을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고백했다. 어떤 날엔 위로를 받았고 어떤 날엔 기분이 상했다.
- 위로받은 날들
(1) 4월 29일 여의도에서
3개월 전 처음 만난 대학 선배를 두 번째로 본 날에 우울증을 고백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다음날이었다.
대학 전공이 같은지라 서로 직업 만족도에 관해 물었다. 나는 직업 만족도가 낮고, 그래서 괴롭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배가 물었다.
"몸이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죠?"
"네. 그렇지는 않아요."
"그럼 괜찮아요. 저는 몸이 아팠거든요. 2년 전에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서 공황장애가 왔었어요."
평소 적당히 웃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선배는 늘 그래왔던 말투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회사에 있는데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졌어요. 회사 선배들이 놀라서 달려오시고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도와줬어요."
"선배님이 먼저 말씀해 주셨으니 저도 고백할게요. 사실 어제 우울증을 진단받았어요.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주더라고요."
"몸이 아픈 거네요. 저도 약 먹었었어요. 약 복용을 멈춘 지 1년이 조금 넘은 것 같아요. 제가 공황장애를 앓았을 때 제게 도움이 됐던 건 주변 사람들이 '사실 나도 병을 앓고 있다'고 말해줬던 거예요. 회사 선배들이 하나 둘 와서 말하시더라고요.
'봐라. 네가 보기엔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 근데 사실 나도 우울증이야.'
'나도 공황장애를 겪었다.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아도 아픈 사람들이 많더라. 괜찮아.'
우리도 서로 말하기 전까지 서로의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대해서 몰랐잖아요. 약 잘 먹고 운동하면 도움이 많이 돼요."
(2) 6월 2일 공덕에서
긴 말이 아니었는데도 위로가 된다는 기분이 든 적도 있었다.
퇴근 후 대학 친구 한 명, 후배 한 명과 셋이 초밥을 먹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후배가 자신이 시험 준비를 하다가 마음이 지쳐버릴까 두렵다는 말을 했다. 나는 우울증을 고백하며 '마음이 지치면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네"라고 말했다. 약간 놀란 듯 보였지만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 속상했던 날들
(1) 7월 2일 회사 앞 카페에서
회사의 15년 차 선배에게 우울증과 회사 업무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고백했다. 선배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 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줬고, 그 조언은 내게 도움이 됐다.
선배는 대화를 마무리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힘든 거 있으면 선배들에게 많이 말하세요. 다 도와줄 거야.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쓰지 않으면 돼."
이날 저녁 집에 와서 울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남자친구는 자신이 내게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다행히 남자친구는 이렇게 나를 위로해 줬다.
"우리 그동안에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많았잖아. 앞으로도 많이 생길 거고. 만약 일 년에 네가 힘들다는 말을 하는 날이 30일, 40일이라면 365일 중 고작 10% 정도일 뿐인데. 그런다고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 되나, 아니지."
(2) 5월 10일과 26일 교대에서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려고 했던 말들이 도움이 안 될 때도 많았다.
대학병원 간호사인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응급실에 있으면 10대, 20대 여자 애들이 자살하려고 약 먹고 정말 많이 실려와. 전에 왔던 애가 또 오고 또 와. 근데 자살 시도해서 병원에 오면 보험도 안 돼. 부모가 그 병원비 다 내는 거야. 그런 모습 보고 있으면 자살 시도한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한심해. 부모 돈만 맨날 축내잖니. 그래도 우리는 돈 벌잖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어느 한 남사친은 내 기분을 풀어주려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너 내가 1등 신붓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겠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랑은 결혼 못 해. 탈락."
- 위로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우울할 때는 위로가 귀에 안 들어와요. 위로가 위로로 들린다는 것 자체가 우울증 치료의 긍정적 신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