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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서평]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by 손수제비

책의 종류는 다양하다. 재미있는 소설,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공부하는데 필요한 수험서와 참고서, 여행과 요리 등 실용적인 목적으로 쓴 글들까지. 아마도 지구상의 모든 물건 중에서 사는 데에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중 하나가 책이지 않을까.


이번에 읽은 책은 장르로 따지자면 '에세이'이다. 개인적으로 잘 구매하지 않는 장르이고 제목도 처음엔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참 잘 샀다'는 마음이 일었다. 비록 내 기준이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 보다도 몰입해서 읽은



IE003415055_STD.jpg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표지 ⓒ 달



조승리 작가의 책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달, 2024)에는 시각장애인인 작가 자신의 삶이 담겨있다. 다른 장애인에 비해 잘 보기 힘든, 그래서 더 생소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내가 읽었던 어떤 책 보다도 몰입해서 읽었다. 단순히 필력으로 인함이라기보다는 한마디로 말하기 힘든, '어떤 힘'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열다섯 살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그녀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서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거절당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별일이 아닌 것에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일이 빈번해서, 현실의 제약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책의 제목만 보고 코믹적인 요소가 조금은 있을지도 모른다며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그래서 공감하기 쉽지 않았던 시각장애인의 삶은 칠흑 같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선).



손끝으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시각장애인은 눈이 아닌 손으로 세상과 만난다. 손을 통한 접근은 효율이 떨어지고 제한적이다. 일정 나이가 되면 누구나 당연히 알법한 것들도 이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사슴? 그건 어떻게 생겼어?"
아이들이 속닥거렸다.
"몰라, 나는 만져본 적이 없어."
"나도."


불꽃놀이가 한창일 때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지만, 글쓴이에게는 그저 평소와 같은 하루일 뿐이다.


나는 어둠을 훑어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수백 송이의 불꽃이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일상 속에서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녀는 일터인 마사지샵에 가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데, 문제는 장애인 콜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10분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3시간을 써야 하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보행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사람도 시내 한복판에서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차량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크고 작은 모든 사건 사고에 실시간으로 노출됨을 의미한다.


여성이기에 겪는 어려움도 있다. 이들은 쉽게 각종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작가에 의하면 여성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성범죄의 위협을 1차례 이상은 경험한다고 한다.



IE003415059_STD.jpg ▲저자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가난'이 더 큰 아픔이라고 말한다. ⓒ 픽사베이



책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저자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가난이 더 아프다고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도, 가난으로 인해 어두워진 마음도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일 텐데, 이런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대생인 내 부모님이 살던 당시에는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보다 형제자매는 많았지만 질병으로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2달 늦게 출생신고를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안타깝게도 그녀를 보육원에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하루만 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보내는 것을 하루씩 미루었고, 그러다 보니 2달이 지났으며, 보육원 생각이 차츰 줄어들었다고.


아프면 낫기 위해 맞는 주사가 그녀에게는 사치였고, 누군가는 하찮은 직업으로 치부하는 경리가 그녀에게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2월 말 둘째의 유치원 졸업식에 가져갈 꽃다발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준비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꽃다발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살았기 때문에 나는 죄스러웠다. 너무 아프면 놔주겠다는 간호사의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 이를 앙다물고 고통을 참았다. 주사 한 대가 모두 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발표할 일이 있었다. 나는 확고한 신념처럼 '경리'라고 적어 냈다. 담임선생님은 내 장래희망을 보고 한심한 눈초리로 너는 어떻게 꿈도 없냐고 쏘아붙였다. 꿈이 있었기에 그리 적어 낸 것임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꽃다발을 비싼 쓰레기라 터부시 했던 지난 과거가 사실은 받아본 적 없는 질투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내게 꽃다발은 나를 가장 초라하게 만들었고 서글펐던 기억을 회상케 하는 매개물이었다.

지독하다는 소리가 내 등뒤에 이름표처럼 붙었다. 성실한 노동과 절제는 늘어나는 숫자로 정직히 보답해 주었다. 1년짜리 적금을 타는 날에도, 3년을 부은 적금 만기 날에도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은 붕어빵 천 원어치였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눈이 보이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게 힘들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장애인이나 빈자가 살기 좋은 곳이 여전히 못된다. 이런 상황을 넘기 위한 그녀 나름의 대안은 '체념'이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 때, 바라는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 원망하며 분노하는 대신 미련 자체를 갖지 않은 것.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가족 또한 체념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녀의 부모님은 딸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딸의 눈을 고치겠다며 여러 가지 시도를, 때로는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이는 노력을 했지만 냉정한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누구보다 딸의 장애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렇다고 가시 돋친 말로 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딸은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지만, 엄마의 존재가 언제나 따뜻한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가족 누구도 오지 않았던 고등학교 졸업식날 저녁, 가족이 나눈 대화 한 토막에는 서글픔이 가득 묻어난다


"야! X신 학교 졸업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 그게 자랑거리냐고?"
"그래, X신 학교잖아! 그러니 엄마가 더 왔어야지! 나한텐 첫 졸업식이었어. 가족 아무도 오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고. 오늘 난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럼 기대도 없었을 거 아니야!"


비록 삶 속에 체념이 가득하지만 글쓴이는 욕망과 삶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출간 작가이고 마사지사라는 직업도 갖고 있다.


취미는 무려 '여행'과 '플라멩코'이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며 경험한다. 무수한 체념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끝까지 붙잡은 채.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나는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으며 낯선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에는 글쓴이가 장애인 자녀를 둔 다른 부모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부모는 아이가 무척 아프고 오래 살지도 못할 것이기에 늘 슬픔을 안고 있으며, 오로지 장애인 자녀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장애아를 낳으면 죄인이 돼야 하나요? 그게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실인가요? 그럼 저는요? 저는 죄의 근원인가요?"


책 말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의 유일하게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 샘터 공모전 입상으로 지인들에게 축하와 꽃다발을 받으며, 글쓴이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난생처음 받은 꽃다발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천천히 꽃의 향기를 음미했다. 자신의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그녀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았다.



IE003415061_STD.jpg ▲한 북토크에서 조승리 작가가 말을 하고 있는 모습 ⓒ 달출판사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참 공평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글을 알고 쓰고자 할 의지와 도구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물론 보이지 않는 사람이 책을 쓰는 것은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녀의 에세이는 지금껏 내가 읽은 어떤 글보다 가슴에 더 와닿았다.


책을 덮자마자 아끼는 지인들이 떠올랐다. 그들 모두에게 내가 느낀 먹먹함과 벅찬 감동을 하루빨리 공유하고 싶었다. 가슴 시리도록 아프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그녀의 삶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지인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글은 여전히 못 미덥지만, 가끔 내놓기도 부끄러운 글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글이 서툴다는 부끄러움이 책을 알리고 싶은 간절함을 이기지 못했기에, 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은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삶에 대한 체념과 아픔, 의지가 모두 담긴 담담한 문장들이 가슴을 후벼 판다. 더 늦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여전한 힘든 삶을 견디며 당당하게 승리하고 있을 조승리 작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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