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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미없었던 소설

하지만 빛이 나는 소설,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를 읽고

by 손수제비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는 10가지도 넘지만, 그중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재미'라 생각한다. 소재나 문체, 형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책이든 재밌기만 하면 쑥쑥 읽히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소설이 재미있는 건 아니다. 최근에 읽은 조해진의『빛과 멜로디』(문학동네, 2024)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르타주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큰 굴곡 없는 서사로 구성된,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 책을 읽으며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중간에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꾸역꾸역 읽었다.


집중이 어려웠던 것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우선 '재미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몇 가지 키워드는 '전쟁', '죽음', '사진'이다. 삶에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던 사람이 포탄과 폭격, 죽음이 가득한 전장에서 누군가를 카메라 렌즈에 담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그런 내용들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에 취약한 편인데 (책을 덮을 때까지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홍길동 같은 한국식 이름이 아닌 '톰', '섀넌'같은 외국식 이름이라도 나오면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이 책은 전쟁과 직접 관련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인물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내내 글의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인명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상상 속의 이야기를 글로 써냈다기에는 상황과 장면의 묘사가 꽤나 상세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술술 읽혔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 그것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 사람의 마음들, 자신의 갓난아기를 두고 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다른 여인을 인터뷰하는 아빠의 모습이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손에 잡힐 듯 익숙하게 느껴졌다.


책 <빛의 멜로디>를 읽으며 비록 짜릿한 재미를 찾지는 못했지만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었다. 책 말미에 작가가 직접 밝혔듯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사진을 담은 작가, 실제 (목숨이 위험한) 분쟁 지역에 체류하는 이들에게 문장과 영상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직접 전쟁세미나에 참석하며 현장의 생생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기위해 노력했다.


"카메라는 나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물이었죠."

승준이 굳이 분쟁 지역의 사람들을 찍는 이유를 물었을 때는 이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사람을 살리는 사진을 찍고 싶으니까요. 죽음만을 생각하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잊히지 않게 하는 사진을 찍는 거. 그게 내가 사는 이유예요"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으며 결국 한쪽 다리를 잃은 권은에게 사진을 찍는 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듯, 조해진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행위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지 않을까. 그녀는 딱히 재미가 없고 돈도 되지 않는, 어둡고 침울한 세계에 기꺼이 관심을 가진다. 또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연대하며 글을 써나간다. 은은한 빛을 비춰가면서.


조해진 작가는 먼 나라의 참혹함과 내 가족의 생존이 별개가 아님을, 살리는 일의 귀함과 소박함을, 이 의심과 냉소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 설득해 낸다. "폭격 소리가 가까워져도 응급수술을 중단하지 않는"의사와 간호사처럼. 소설만이 도달 가능한 힘으로, 기꺼이 서로에게 피난처가 되고자 하는 우리 마음속 빛 조각들을 끌어모은다. - 김하나(작가)


작가는 결국 자신이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것을 쓰고, 끊임없이 다시 읽고 뜯어고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나온 책은 곧 작가 자신이라 할 수 있겠다. <빛과 멜로디>라는 제목처럼, 자신에게서 빛이 난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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