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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가 말하는 단순하게 산다는 것

황보름 작가의 책 <단순 생활자>를 읽고

by 손수제비

책과 관련된 대화를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사서 친구가 있다. 도서관에서 근무한다는 것만으로 책과 친밀한 삶을 살 것 같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면 책을 읽기보다는 다른 일들로 바쁘단다. 책표지와 청구기호를 보고 책을 꽂는 뭔가 재미없어 보이는 그런 일들.


하지만 '너는 사서니까 책 좀 추천해 줘!'라는 나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녀석은 당황하지 않고 3권을 추천해 주었다. 2권은 이미 읽었고 나머지 한 권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소개해 준 책들에 대한 만족도가 꽤나 높았기에 하나는 여분으로 남겨두었다. 그 책은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이다.


수개월이 지나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를 휴남동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쯤(혹시 몰라 카카오맵에 '휴남동'을 찍어보니, 그런 동네는 안 나왔다) 집 앞 도서관에서 황보름 작가의 다른 책인 <단순 생활자>를 발견했고, 꿩대신 닭이라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IE003410779_STD.jpg ▲책 <단순 생활자> 표지 ⓒ 열림원



책 <단순 생활자>에 나타난 작가의 삶은 단출하고 심플했다. 혼자 놀기와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나와 코드가 비슷했다. '뱃살'이라는 낱말이 여러 번 등장해서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루틴 중 하나는 '걷기'이다. 또한 하루 한 끼는 꼭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건강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런데 맥주는 왜 그리 좋아하는 거지?


그동안 작가들이 쓴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혼자만의 글 쓰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글을 쓰기 위해 꾸준히 체력 단련을 한다는 점 등이 있었다. 그중 가장 공감되지 않는 내용은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라고 호소한다는 점이었다(그들 모두 '베스트셀러'작가다).


황보름 작가 또한 이 부분을 언급했다. 글쓰기가 너무 어렵고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을 때도 있었다고. 하루에 A4용지 반 장을 쓰면 많이 쓴 거라고.


내가 쓴 글이 남이 읽기에 좋은 글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가벼운 농담을 적은 몇 문장의 글이 커다란 오점이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일었다. 처음 글을 쓸 때보다 글쓰기에 더 자신이 없어졌다. 이런 마음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세 번째 책 편집 교정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던 해였다.


작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글쓰기가 어렵다'는 말에 100% 공감하지는 않는다. 교보문고에 가면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김애란, 정유정, 정보라, 구병모, 김초엽 등의 작가들과 나란히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코너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하지만 쉽지 않은 삶


책을 쓰며, 단순하게 산다는 건 사는 데 불필요한 것들은 되도록 걷어내고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일들에 시간을 들이며 사는 일이라는 걸 이해해 갔다. 내 삶에 꼭 있어주었으면 싶은 것들을 몇 개 정해놓고 그것들을 하면서 시적시적 걷듯 생활하는 마음이 좋았다.

혼자 살아서 좋은 건, 글을 쓰는 작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일 직접 요리하고 집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살림을 건사하는 생활인의 모습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살림을 건사하는 건 나를 건사하는 일이라서, 매일 나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를 보는 기분이 좋았다.


남이 시키는 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바라는 일로 차곡차곡 채워진 삶은 누구나 바라는 삶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이상적인 삶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깨어있는 내내 온갖 영상과 정보, 혹은 부유하는 말들이 삶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원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는 '경제적으로 아쉽지 않은 상태'라는 중요한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황보름작가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거 모르겠고 마이 웨이'의 삶을 고수한다. 독립 이후 그녀의 삶은 한층 더 건강하고 심플하게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앞가림을 똑바로 하는 것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 보다 '내가 바라는 삶, 단순한 삶'을 최우선으로 하는 작가가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기도 하다.


요리를 직접 해 먹으려는 이유는, 내 일상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요리만 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지금껏 매일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의 인생이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단 소리를 들은 적 없다. 내가 듣고 본 이야기 속에서, 요리는 보통 뿔뿔이 흩어졌던 하루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는 요도로, 삶을 재건하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책 후반부에는 '외로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나온다. 우울과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쯤은 겪는다는, 이 어둡고 칙칙한 감정을 자신이 좋아하는 '걷기'와 연결하며 담담하게 흘려보내는 모습에서, 이 사람 마음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눌리지 않고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누리는 삶을 살기에 가능한 것일까.


외로운데 우리는 왜 다 걸을까. 외로운데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대신 혼자가 될까. 노화가 진행될 만큼 나이를 먹다 보니 알게 된 걸까. 외로움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는 걸.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내 안의 외로움을 깨끗이 지워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나조차 내 안의 외로움을 깨끗이 지우지 못하다는 것 역시 우리는 알고 있는지도. 그래서 걷는 걸까. 외로움과 함께 걸어가는 법을 알아가기 위해.


그녀의 삶만큼이나 담백한 문장들로 가득한 책 <단순 생활자>를 읽고 나니 간단하지만 든든한 영양식을 먹은 느낌이다. 더불어 작가의 삶을 보며 지금보다 조금은 덜 바쁜 나의 일상을 그려본다. 눈코 뜰 새 없이 빽빽한 하루가 아닌 비우고 덜어내는 삶, 원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삶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삶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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