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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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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Dec 07. 2023

감사일기 23.12.07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불평과 불만은 내 주특기이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불행한 이유'를 누구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다. 때로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가도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생소한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까.


팀원들이 함께 있는 사무실에서, 혹은 단톡방에서 내가 했던 말을 곱씹어본다. "업무가 쓰레기 같다, 이 회사는 답이 없다, 능력이 없어서 이 회사로 다시 복직한 내 잘못이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닌다." 주로 이런 형태의 말이었던 것 같다.


오늘 읽은 책의 제목은 '다정한 말이 똑똑한 말을 이깁니다'였다. 어떤 내용인지 대략 예측이 되었지만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을 왕래하는 기차 안에서 완독 했다.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불평과 불만, 부정적인 말은 그 말을 하는 주체에게도, 주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강하게 끼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상과 업무에 대한 불평과 불만, 일에 대한 힘듦을 내뱉는 게 매일의 일과가 된 것 같다.


비록 팀원들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불편했을지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자책감이 생긴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전염성이 무척 강한데, 내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와중에도 애써 나에게 웃으며 말을 걸어주던 팀원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좀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희망을 얻은 부분은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과 감사하는 말의 파급력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감사의 말들은 불평과 비관적인 에너지를 이기고도 남는다고.


부끄럽지만 오랜만에 쥐어짜서 감사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나 자신과 주위에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


1.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이 치쳐서 매일 쓰러지다시피 잠들지만, 어떻게든 하루를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 선한 것인지 100% 확신이 생기지는 않지만,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2. 자녀들이 아빠를 사랑함에 감사합니다.


주말에만 가족과 함께하다 보니 평일 저녁마다 자녀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둘째의 경우 색종이를 접거나 간식을 먹는다고 심드렁할 때가 있지만, 딸아이는 눈을 마주하며 보고 싶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내일 저녁에 집에서 밥을 먹지 않고 함께 돼지국밥을 먹자는 아이의 말에 감사하다. (입맛이 나를 닮았다)


3. 조금씩이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피곤하고 귀찮고 돈을 아낀다는 핑계로 매일 라면만 먹었더니 몸이 안 좋아졌다. 지난번 당근마켓 거래를 통해 중고 전자레인지를 들인 이후 햇반을 돌려서 밥을 먹는 게 가능해졌다.


본가표 김치와 일미, 김, 오징어국과 시래깃국, 집에서 갖고 온 스팸과 집 앞 마트에서 며칠 전에 구매한 계란까지 해서 혼자 대충 한 끼 먹을 준비는 갖춰졌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제 라면대신 햇반을 돌려서 간단히 밥을 차려먹는다.


4. 꾸준히 읽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글을 쓸 에너지는 없지만, 쓰는 것에 비해 읽기는 힘은 덜 들면서 더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그래도 1주에 책 1권 정도는 억지로 읽는 것 같다. 장르와 내용을 떠나서 읽는 순간에는 잠시나마 업무에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독서는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긍정과 감사의 언어로 마음의 근육을 회복한다면, 조금씩 글을 끼적이는 것도 용기를 내보고 싶다.


5. 문제에 매몰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이 완벽하게 해결될 때까지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 편이다. 업무 특성상 매일 예측하지 못하는 수 십 가지의 특이사항이 발생하는 일을 하다 보니 깨어있는 내내 온몸에 불안과 염려,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러한 패턴이 지속되다 보니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 그 자체보다 그 문제를 대하는 내 태도가 더 큰 어려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일이고 때로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머리를 싸매고 끙끙댄다고 해서 당장 나아질 것도 아닌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모든 게 내 책임인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을 하거나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빠질 때가 많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이 있고 내 성향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객관적으로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힘들다고 할지라도 특정 상황과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6. 아내와의 대화에서 화를 내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아내가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신비아파트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했다. 자녀들이 워낙 좋아해서 예전부터 보고 싶어 했는데 이번에 부산에 공연이 있어 예매를 했다고.


평소의 나라면 짜증을 냈을 것 같다. 티켓 하나에 몇 만 원이면 셋이서 (나는 병원 진료가 있어서 가지 못한다) 10만 원은 나올 건데, 거기에 밥이라도 먹는다면..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핑계로) 소비를 줄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런 못난 남편이자 아빠이니까.


나는 같이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 돈이면 다른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비용이 적지는 않지만 가치가 없다고 치부해 버리고 화를 내는 것도 제대로 된 아빠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짜증을 내든 감사를 하고 아이들을 안아주든 통장 잔고에는 변함이 없다. 이미 예매는 끝났고 달라지는 게 없다면 아이들과 아내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재미있게 잘 다녀왔냐고, 다음에는 아빠도 함께하자고 웃으며 말해주는 게 조금 더 건강한 행동이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한다.


일용할 양식과 사랑하는 가족, 누울 수 있는 집이 있음을 감사한다.


오랜만에 끼적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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