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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게는 안녕하십니까

책 <마은의 가게>를 읽고

by 손수제비

우리나라 직업은 크게 몇 가지로 분류된다. 직장인, 교사, 전문직,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 자영업자, 개인사업자 등. 최근에는 직업안정성이 떨어지면서 프리랜서와 N잡러들이 늘고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귀속 종합소득세를 신고한 개인사업자의 사업장은 1217만 8914개다. 이중 100만 곳은 수익을 내지 못했으며, 한 달 평균 수익이 100만 원 이하인 곳이 전체에 67%에 달한다고 한다. 2025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한 달 근무 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2,096,270원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기준)


자영업 생존율은 평균 2.8년으로 1년 이내 폐업이 30%가 넘는다. 이 정도면 스스로 자영업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자영업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혹은 떠밀리는 사회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IE003536837_STD.jpg 책 마은의 가게 표지 ⓒ 문학과 지성사


자영업자의 삶


이서수 작가의 책 <마은의 가게>(문학과 지성사, 2024)은 지난해 4월 발간 됐지만, 자영업자들의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과거 실제로 카페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묶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주인공 '마은'은 학원 강사일과 연극배우 일을 했으나 여의치 않아 카페를 오픈한다. 창업에 대한 충분하지 못한 준비, 부족한 자금은 오픈 전부터 매장을 운영하는 내내 마은의 발목을 잡는다.


마은의 가게는 오로지 마은 혼자만의 힘으로 운영된다. 오픈 전 인테리어부터 메뉴 선정, 판매준비, 고객응대, 청소, 마감까지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1인 운영 점포의 경우 생계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개인 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자리를 비울 수가 없기에 병원을 가거나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돌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에 일상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


"장사를 안 할 것도 아니고, 매일 문을 열려면 전날 겪은 지저분한 일들은 빨리 털어야 하잖아. 다시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만나고 물건도 팔아야 하니까 빨리 잊고 싶은 거야. 잊지 않고 살아갈 여유가 없는 거지. 그걸 기억하는 것조차 시간이 없어서 못 해." -244


기술은 발전하고 국민들의 소득은 높아지지만 사람들의 교양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다. 고객이면 무조건 왕이고, 노동자에게 함부로 행동해도 된다는 인식이 느껴지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운영주 입장에서는 고객 한 명 한 명이 곧 밥줄이기에, 속이 타들어갈지라도 이들에게 한결같은 웃음과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


"아내가 예전에 카페를 했었는데, 장사는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던데요. 회사원은 목숨까진 안 걸어도 되는데." - 214


책에 나오는 말이지만 실제로도 종종 듣는 말이다. 웬만한 각오로는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나는 10년 차 넘는 직장인이고 매일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자영업자에 비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마은의 가게>에는 여자라서 겪게 되는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나타난다. 오프라인 형태의 가게를 운영하려면 투자금이 필요하다. 인테리어 비용과 각종 집기류 구매, 건물과 관련된 비용(권리금, 보증금)만 하더라도 최소 수 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든다. 넉넉한 상황에서 창업을 하는 게 아니라면 대출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회사 특성상 동일한 조건이라면 남성에 비해 여성이 보유한 자금이 적을 확률이 높다. 급여가 낮다면 대출 한도 또한 낮다.


마은은 지방 외곽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매장에 CCTV하나 없다. 드물게 하나둘 오는 손님은 대부분 동네 주민으로 모두 얼굴을 알 정도이다. 그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생활하던 고시원 생활을 접고 카페에서 숙식을 한다. 마은의 가게는 낮에는 카페, 밤에는 집으로 활용된다.


'여성이 혼자 운영하는 카페'는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 주위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마은은 '비상벨'을 설치하지 않았는데, 많은 남자 고객들이 그녀를 희롱하고 카페 앞에서 담배를 계속 피우는 등 지속적인 위협을 준다. 카페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잘 때 전면 유리에 나타나는 낯선 남성의 실루엣은 밤마다 그녀를 괴롭게 한다.


조금 더 단단한 사회가 되었으면



우리는 동등할 수 없는 걸까. 이웃이자 손님인 그들과 자영업자는 결코 동등해질 수 없는 걸까. 무조건 그들의 취향에 나를 맞추고 그들의 평가에 전전긍긍해야 할까. 자영업자니까, 서비스업이니까, 돈을 받았으니까? - 204


회사가 덤프트럭이라면 자영업은 오토바이인 느낌이다. 자영업자들은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직장인들과 달리 자영업자들은 월급날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가, 경기, 사회 이슈 등 각종 외부 영향들을 온몸으로 받는다. 오토바이 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외부의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듯이.


취업문은 좁지만 창업의 문은 무겁다. 형태가 있는 가게를 오픈하고 내 이름으로 된 사업자를 낸다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가게를 운영하면 고정비라는 게 발생한다. 이는 매출에 상관없이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다. 임차료, 원재료 구입비, 수도 및 전기세, 각종 세금, 투자를 위해 대출한 대출금 이자까지. 이를 꼬박꼬박 갚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 정도는 팔아야 하는' 매출(BEP)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할 경우, 가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또 다른 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사를 하면 되지만, 장사가 안 된다고 가게를 당장 그만둘 수는 없다. 자금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보니 선택에 제약이 따른다. 건물주와의 계약기간이 남아있다면 폐업 이후에도 임대료를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시작도, 운영도, 마무리도 힘든 것이 자영업이다. 이 정도면 자영업을 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들이라고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알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어떻게든 돈은 필요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냉정하다. 당장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해서 사회는 개인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금리가 쑥쑥 올라갈 때,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산사태 나듯 무너졌다.


책 <마은의 가게>를 쓴 이서수 작가 또한 가게 운영을 다시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녀가 창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 그녀가 겪었던 모질고 힘들었던 무게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작가가 가장 좋아한다는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떠밀리는 사람들이 최소화되는 나라, 자영업을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안전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다양한 일자리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자영업자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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