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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Feb 01. 2024

자발적 혼밥러가 되었습니다

혼자 밥을 먹기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되고서부터였다. 좁은 교실에서 수십 명이 복작거리던 고등학생때와는 달리 대학생활은 모든 것이 혼자였다.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을 보내며, 밥을 먹는 것까지.


처음에는 혼자 밥을 먹는 게 어색했다. 혈기왕성하던 10대 때는 열명이서 넘게 떠들며 밥을 먹었었는데, 가만히 멀뚱멀뚱 앉아서 혼자 밥 먹으려니 적응이 잘 안 됐다.


친구가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이 쓰이기도 했던  같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야말로 차렷자세로 허공을 응시하며 꾸역꾸역 밥을 털어 넣었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장점도 많았다. 메뉴를 고르느라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함께 먹는 사람과의 불필요한 대화 없이 오롯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졸업 후 입사와 동시에 혼자서 밥을 먹는 생활은 끝이 났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잃어 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팀장 포함 10명도 채 되지 않는 팀이었지만, 매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메뉴를 선정하는 것부터 산하는 것, 회식 다음날에는 해장을 뭘로 하느냐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이고 루틴 한 식사시간이 낯설고 피곤한 일과로 변해갔다.


메뉴를 선택하는 권한은 99.9% 팀장에게 있었다. 지금껏 거쳐간 팀장이 7명은 되는 것 같은데, 그들은 다양한 출생지역만큼이나 다채로운 식습관을 갖고 있었다.


4발 짐승을 선호하는 팀장, 물고기를 좋아하는 팀장, 1주일에 한 번씩은 분식을 꼭 먹어줘야 탈이 없는 팀장도 있었다. 지금처럼 배달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 누군가는 픽업을 위해 업무시간에 뛰쳐나가야 했다.


눈치 보지말고 너네들 먹고싶은 거 다 시켜. 난 짜장면! ⓒ농민신문





10년 정도가 지나면서 이런 삶도 익숙해졌다. 적어도 막무가내식의 회식보다는 훨씬 나았다.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단체생활에서 이런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개념 없고 버릇없는 직장인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나의 식사 패턴이 또 바뀌었다. 단 한 번도 팀장의 메뉴선정에 토를 달지 않았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예상치 못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저는 따로 먹고 오겠습니다."


나는 싹싹함과는 거리가 멀고 감정이 겉으로 바로 드러나는 스타일이지만, 식사메뉴 선정에 불만을 품고 대놓고 항의를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원인으로 이런 발언을  것이다.


업무특성상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내근이 집중된다. 11시쯤 조금 이른 시간에 점심을 먹거나, 아예 한 타임 늦게 밥을 먹는 편이다. 매번 나가기도 귀찮고, 이동시간도 줄이려는 목적으로 최근에 배달음식을 부쩍 자주 시켜 먹었다.


배달을 자주 시키면서 건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배달음식은 기본 단가 자체가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같은 햄버거세트를 시켜 먹어도 현장에서 먹는 것과 배달로 먹는 것의 가격이 다르다. 몇백 원이 아닌 몇천 원 차이가 나다 보니, 꽤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나는 연고지가 아닌 타지방으로 발령을 받은 터라 생활비가 2중으로 드는 상황이었다. 매일 2끼를 사 먹는 게 부담이 돼서 저녁은 꼭 집에서 먹는다. 하지만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순간 하루하루 생활비를 아끼려는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다.


그날 점심 (배달) 메뉴는 건강식 샐러드였다. 쇠고기와 싱싱한 야채로 구성된 건강과 맛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메뉴였다. 평균 단가 1만 원 후반 대라는 충격적인 금액과 함께.






사무실에서 30m 거리에 현재 거주 중인 오피스텔이 있다. 많은 음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간단히 한 끼 먹을 정도는 된다.


210g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고 계란 세 개를 구웠다. 본가에서 공수해 온 일미무침을 내고 김치찌개를 냄비에 담아 팔팔 끓였다.


집으로 와서 밥을 차리고 먹고 설거지를 했다. 10분 정도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사무실로 갔다. 그제야 배달음식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미 밥을 먹었지만, 이럴 따는 눈치껏 조금 더 쉬어준다. 어차피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하루 8시간 근로시간 따위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니. 


앞으로 종종 집밥 찬스를 쓸 계획이다. 밥을 따로 먹겠다는 당당한 내 말에 팀장의 반응도 생각보다 쿨했다. 팀장 입에서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라는 충격적인 발언이 나오려는 것을 감지한 나는 빛의 속도로 뛰쳐나갔다.


예전에는 이런 행동조차 눈치를 보면서 끙끙거렸을 텐데, 시대가 변하긴 변했나 보다. 웬만하면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싶지만, 물가가 너무 높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함께하기 싫은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나는 자발적 혼밥러가 되었다.



계란후라이와 김치찌개 조합은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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