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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Feb 14. 2024

무엇을 읽을까

정답을 말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혹은 '짜장면, 짬뽕?'과 같은 것들. 질문에 대한 온전한 답은 아니지만 '엄빠', '짬짜면' 같은 새로운 단어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찾기가 어려운, 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바로 어떤 책을 읽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무수히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이 책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 종종 고민하지만,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독가인 지인은 '그저 네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된다'라고 했다. 한 번은 글쓰기 플랫폼에 책을 고르는 기준에 대한 문의를 남긴 적이 있었다. 한 유명한 소설가는 해당 질문에 대해 '눈에 끌리는 책을 아무 거나 집어드는 편이다'라는 답을 남겼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2년에 발행된 책은 7,291만 992부라고 한다. 1주일에 책을 한 권 읽는다면 1년에 52권을 읽는 셈이다. 이는 발행된 전체 책의 약 0.0001%에 해당된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 베스트셀러에 목을 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최근 글쓰기 플랫폼에서 소통하는 분들이 잇달아 책을 출간했다. 책 선정에 대한 고민 없이 읽을 책들이 생긴 셈이다. 평소에 그들이 쓴 글을 읽어왔기에 다른 책들보다 우선해서 읽어보았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나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라 간략히 소개해 본다.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믹스커피



처음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책을 떠올렸다. 학생 시절부터 역사에 크게 흥미가 없었고, 부끄럽지만 지금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내가 즐겨 읽는 장르인 문학과는 무관해 보였고, 4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책은 의외로 잘 읽혔다. 재미없고 어려운 역사책이 아닌 40개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글씨 크기가 크고 자간거리가 넓어 가독성도 좋았다. 풍부한 사진과 삽화들은 읽는 내내 현장감을 더해주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독재정권과 민주주의를 거치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일구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이 뒤따랐다. 이 책은 과거 외적인 성장과 발전에 집중하기보다는 성장 이면에 있는 어두운 과거사들을 가감 없이 파헤친다. 경제가 수직 상승하며 성장할 때도, 마침내 독재정권이 무너지며 민주주의 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될 때도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편에는 언제나 욕망과 추락, 죄와 벌의 시간들이 공존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의 잘못되고 어리석은 행동들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와우아파트와 성수대교, 상품백화점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부실건축은 자행되고 있다. 사람들의 안전과 목숨보다 빠르고 저렴한 완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금융사고와 보이스피싱으로 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리기도 한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위협할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더 많은 신도들이 사이비종교로 불나방처럼 몰려든다. 상식을 벗어난 혐오스럽고 반인륜적인 사건 사고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픔과 부끄러움의 역사가 반복되는 가운데서도 희망과 치유의 역사를 살아내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비록 한 치 앞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지만,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올바른 신념과 부끄럽지 않은 양심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로 인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따라 살아갈 때, 이와 무관하게 더 높은 가치와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더 나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이 책의 타이틀은 '현대사를 뒤흔든 사건'이지만, 역사가 아닌 한 개인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격변하는 시대에서 개인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된 삶인가. 나는 선하고 바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 나는 과거 조상들의 어리석고 잘못된 삶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는가.  


책을 읽으며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내가 속한 사회는 어떤 상태이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루아크



이 책은 일단 비주얼이 합격이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지 디자인과 단아한 색상, 휴대하기 좋은 콤팩트한 사이즈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를 외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흰 바탕의 표지를 보면 연필 한 자루가 놓여있다. 우측 하단에는 '생애 첫 글쓰기 수업'이라는 부제도 있다.

차분한 마음으로 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뭔가 각을 잡고 1일 1 글쓰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살짝 차오른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도서관에 가보면 글쓰기와 관련된 책이 매우 많다. '수학의 정석'을 보는 듯한 글쓰기의 바이블과 같은 책이 있고,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술적인 내용을 담은 책도 있다. 다양한 글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글쓰기의 형태를 알려주는 책도 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기도 하다. 저자는 글쓰기를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자신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지,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의 흔적들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외모와 인간관계, 직업, 재산 등 책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녀는 남들보다 늦은 20대 후반에 폭풍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또래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을 때, 두려운 현실을 마주하기보다는 도피하는 삶을 택한다.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글쓰기만은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오래 해온 게 글쓰기이기도 했고, 쓰는 것이 다른 것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잘 써서가 아니라, 당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 밖에 없는 삶이었다고.


스스로를 '쓰는 사람'이라 명명하는 그녀에게서 글쓰기에 대한 단순한 애착을 넘어선 절박함이 느껴진다. 저자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취미 생활이나 업(業)이 아닌, 삶 자체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함과 동시에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에게 삶과 글쓰기는 언제나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몰입이 되었던 건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이유를 하나로 콕 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나 또한 쓰는 삶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힘든 현실을 견디어 나가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바쁜 업무로 가득 찬 삶 속에서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집중이 필요하다. 책을 출간해 내는 글벗들과는 달리, 내 글은 공개적인 공간에 내어놓기 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내가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글의 수준과 상관없이 나 또한 쓰는 삶에 진심이기 때문이 아닐까. 글을 쓰는 시간은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하고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다.   


우리나라는 힘든 사람이 참 많다. 자살과 저출생, 각종 정신질환이 가득한 현실은 우리네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과거 불행했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씀으로써 더 단단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많은 지식과 기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와 시간, 펜(핸드폰)만 있으면 가능하다. 쓰는 삶을 통해 우리 또한 자신의 삶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사실 책 읽기에 있어서 편식이 심한 편이다. 내가 읽는 대부분의 책은 문학과 소설 위주이다.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를 얻기 위함이고, 이 목적은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나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글벗들의 책을 읽으며 다양한 책을 읽는 것 또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이들이 몸과 마음을 갈아 써 내려간 책을 보며 나의 좁은 생각과 시선이 더 넓어지고 확장됨을 느낀다.


하나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게 아닐까. 책은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 삶이 그대로 응축된 하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감과 연대,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만족과 이익이 극대화되는 세상이다. 자극적이고 짧은 영상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나는 여전히 텍스트의 힘을 믿는다. 바쁜 가운데서도 읽는 사람, 쓰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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