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수제비 Apr 16. 2024

그리움이 그립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읽고

넘치는 업무로 인해 글쓰기를 가볍게 내려놨다. 아주 가끔씩 무언가를 끼적이고픈 욕망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퇴근 이후 나의 몸은 방전된 배터리마냥 흐물흐물해져 있다. 몸은 언제나 피곤하고 정신이 피폐하며 시간도 부족하다. 이런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비합리를 넘어서 비정상에 가깝게 느껴진다. 


예전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하나 쓰는 데 10시간도 더 걸린 것을 생각하니 새삼 놀랍다. 물론 글쓰기로 인해 얻은 것도 있고 가뭄에 콩 나듯 칭찬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글을 쓰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쓰는 것에 비해 책을 읽는 것은 비교적 쉽기 때문에 매주 1권 정도는 책을 읽는다. 새 책을 구매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하며, 요즘은 '윌라'같은 구독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공짜로 지원해 준다! 그런데 읽을 시간이...)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김혼비 작가가 기억에 남는다. '다정소감',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어보니 나머지 책들도 읽고 싶어 이번에 책을 하나 구매했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다소 섬뜩한 책의 제목과는 달리, 두 명의 작가가 1년 동안 알콩달콩 편지를 주고받은 것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문학동네



두껍지 않은 데다가 가벼운 일상이 주로 담겨 있어 어렵지 않게 읽혔다. 두 명의 작가 모두 개그 욕심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많은 것 같다) 유쾌했고, 건강, 취미, 번아웃, 관계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소재로 구성되어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탄탄하고 매끄러운 문장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한 때 손글씨를 참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김혼비 작가는 글쓰기 중 편지를 쓰는 것을 가장 힘들어해서 과거 누구에게도 답장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펜팔 세대인 나는 (작가도 나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은데) 누군가와 편지로 소통하는 것이 꽤나 익숙하다.


편지글이라는 게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5G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편지로써만 얻을 수 있는 고유한 정서와 감동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한창 편지를 주고받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 비록 얼굴도 모르지만 지도 끝에 있는 여자 사람친구에게 편지를 썼던 일(카톡 프사 따위 없던 시절이라 다소 엄숙하고 진지한 느낌이지만 '증명사진'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었다!), 라디오 사연을 듣고 시작된 펜팔을 계기로 수년간 손글씨로만 소통했던 일, 군대에서 나를 기다려준 여자친구에게 보내기 위해 소등 이후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라이트 펜을 들고 100장이 넘게 편지를 썼던 기억들.


두 명의 작가도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런 애틋함을 가졌던 것 같다. 편지를 한 번 쓰는 시간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편지로 소통했던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늘 생각이 나고 서로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누군가와 편지로 소통한 게 10년은 훌쩍 지났지만, 책을 읽으며 문득 '나도 편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카톡과 전화라는 편리한 기술이 있고, 코로나도 종결되어 누군가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 직접 만나도 되지만, 소소하지만 진심인 내 마음을 행간에 담아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것 또한 운치 있고 다정한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무언가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잘 쓰기 위해 퇴고에 퇴고를 하며 뼈를 깎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어쩌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나의 일상이 읽는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이자 전부가 되는, 편지를 건네주고 또 받을 때마다 내 마음에 잠잠하게 스며든, 그때의 그리움이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을 읽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