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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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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Jul 10. 2024

감사 20일 차 : 중화비빔밥

사무실 건너편에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외국인 상점이 즐비해있고 유명한 중식당이 많아 낮에도 곧잘 붐빈다. 영화 올드보이에 나왔던 식당도 있다. 만두가 유명한 ㅇㅇ 가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인기가 좋다.


중식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코스요리까지 합하면 보통 20-30가지 정도 메뉴가 있다. 하지만 보통 메뉴 선정은 3가지를 넘지 않는다. 짬뽕, 자장면, 볶음밥 (혹은 잡채밥).


업무상 들르는 곳 중 울산이 있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중식당이 있는데, 으레 그렇듯 평소처럼 짬뽕을 시키려는 찰나 팀장이 지맘대로(?) 나를 가로막았다.


"중화비빔밥 두 개요"


여기는 다른 메뉴보다 중화비빔밥을 먹어봐야 한단다. 변명인지 강요인지 모를 말을 진지하게 하는 팀장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었다. 처음 와 본 나와는 달리 본인은 몇 번 이곳에 와봤을 테니.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 비록 내 취향은 전혀 존중되지 않았지만.


처음 먹어 본 음식이었다. 뭐랄까. 김치볶음밥처럼 시뻘건데 밥과 야채를 같이 볶은 건 아니고 밥 위에 볶음 야채(+해산물)를 들이부은 형태였다. 볶음짬뽕과 야끼우동에 가까운 느낌.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특히나 중화비빔밥이라는 메뉴는 요리사에 따라 완전 다른 음식이 되기도 한다. 이 가게의 특징은 강렬한 불맛과 꾸덕꾸덕하고 진한 양념이 포인트. 맛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쉽게 질릴 수 있지만, 처음 맛본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입안 가득 퍼지는 불맛과 강한 향, 적당한 해산물과 계란 프라이, 걸쭉한 짬뽕국물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피아노 3중주 같은 느낌이랄까.


오늘 오랜만에 중화비빔밥을 먹었다. 예전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화려한 맛이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 필 받으면 군만두 6개도 시키려 했지만, 위가 줄었는지 배가 금방 찼다.


먹다 보니 예전 팀장 생각이 났다.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내 의사를 묻지도 않았지만,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던 그 모습이. 인간적이라는 말로 때로 회식을 강요하고 코로나라는 핑계로 본인 집에 강제로 호출했던 흉악한(?) 추억도 있지만, 그럼에도 싫지만은 않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못해 죽음이 보이는 회사생활, 지금은 멀리 떨어져 다른 부서에 있는 팀장이 문득 잘 있나 궁금하다. 오랜만에 전화 한번 한다는 게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었다. 뭐,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종종 쳐들어오기도 했었지만.


무사히 하루가 지남에 감사하다. 조만간에 전화나 한통 드려야겠다.



강렬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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