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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고

by 손수제비

※ 2023년 5월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도서관 한편에는 청소년문학이 비치되어 있다. 청소년문학의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소년 보호법에서는 만 19세 미만을 청소년이라 규정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문학은 성인이 되기 전에 읽으면 좋을 주제와 내용을 다룬 책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법적으로 청소년이 아니지만, '4학년도 청소년에 포함된다'는 그럴듯한 논리로 청소년문학을 종종 읽는다. 읽어보면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들이 많다. 두껍지 않고 글씨 크기가 작지 않아서 읽는 부담도 덜하다.


비교적 근래에 읽은 것은 이희영 작가의 '보통의 노을'과 '테스터', 이번에 읽은 추정경 작가의 '열다섯에 곰이라니'였다. 같은 청소년문학을 다루지만 이희영 작가가 묵직한 느낌이라면, 추정경 작가는 문체나 표현이 아기자기하고 좀 더 순화된 느낌이었다. 생각해볼 내용을 던져준다는 것과 재미있다는 것은 두 작가 모두 동일하다.


이 책은 도서관 5월의 추천도서였는데, 교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 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책 표지를 보면서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 읽기도 전이었지만, 작가가 뭔가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사춘기 아이들이 갑자기 하나 둘씩 동물로 변해간다. 곰, 기린, 하이에나, 비둘기, 오소리 등 자라나는 아이들의 취향에 맞게 종류도 다양하다.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온 몸이 털로 뒤 덮인 자신의 몸을 발견해서 집을 떠나 6개월~1년의 방황(?)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그렸다.


'어떤 동물이 되느냐의 기준'은 2가지를 근거로 하는 것 같다. 첫째, 동물이 평소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드러내는 것. 곰이 된 태웅은 실제 느긋하고 소심하지만 착하다. 키 작은 기린 서우는 평소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기린이 된 이후에도 산에 올라가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둘째, 자신이 선호하는 동물이 된다. 아이들마다 선호하는 동물이 각자 다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아이, 돈을 벌고싶은 아이, 힘을 갖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은 아이. 청소년문학이라 착하고 밝은 내용만 있을 것 같지만, 사춘기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선과 악이 이미 뿌리 깊게 자리잡은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초반에 하나 둘 동물화가 되던 것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자 가정과 학교, 일상 전반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게 된다. 사람들이 앉아있는 교실 한가운데 원숭이와 곰이 앉아있고, 목이 길어서 교실로 들어오지 못하는 기린은 교실 밖에서 창문을 통해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다.


동물들끼리 다투거나 인간을 해치는 경우도 생겨난다. 기본 성정은 인간이지만, 동물의 형체를 갖고 있다보니 사람의 법을 적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이를 악용하는 동물들도 생겨난다.


어수선한 가운데 아이들과 동물들, 어른들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 자녀들의 삶 또한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인반수들의 교실에는 사랑과 우정, 학교폭력과 따돌림, 차별, 성적 등 아이들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다.


울산이 고향인 작가는 문예창작과가 아닌 무역학 전공이다. 다독, 다작이 아닌 '다상량'에 특화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엉뚱한 상상을 많이 했다고. 아이들이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녀의 생각에 많은 공감을 했다.


라디오 작가, 드라마 작가를 거치면서 결국 문학의 길을 선택한 저자는 공동체와 연대,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한다. 책 자체도 무척 좋았는데, 저자가 고민하는 키워드에도 눈길이 갔다. 즐겨찾기 리스트에 바로 추가했다. 검색을 해보니 대략 8권 정도의 책을 집필했단다. 읽을 게 많아져서 기쁘다.


책을 읽은 뒤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을 공유해본다.


1. 모든 인간에게 질풍노도의 시기는 필연적인가.


사춘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한다. 내가 자랄 때는 중학생~고등학생 정도 시기를 사춘기라고 한 것 같은데, 요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민함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고민부터 '나 지금 까칠하니까 건드리지 마세요' 모드를 시전하는 아이들 까지 무척 다양하다.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서는 '성인이 되기 전에 크게 방황을 사람은 뒤탈이 없다' 이다. 사람마다 사춘기를 겪는 시점은 다 다른데, 남들처럼 10대 중 후반에 경험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시기를 놓친 누군가는 30대, 혹은 40대 이후 뒤늦게 사춘기를 겪기도 한다.


시기와는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은 살면서 한 번 이상은 혼란의 과정을 겪는 것 같다. 큰 상처를 받거나, 경험하지 않았던 문제나 혼란을 겪는 등 이 시기를 겪으면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사고와 가치관이 형성된다.


예외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본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로 강렬한 사춘기를 겪지만,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고 없이 조용히 이 시기를 보내기도 한다. 평생 무난하고 주위와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우울하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마다 사춘기를 보내는 모습이 다양한 것은 선천적인 것으로 인함인지, 환경적인 것으로 인함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마도 두 가지 모두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2. 내가 동물화가 된다면.


하늘을 날고 싶기는 한데 무거워서 뜨지를 못할 것 같고, 남들과 싸우는 것을 싫어해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포식자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곰이 유력해 보인다. 사람을 좋아해서 멍멍이가 될지도..


3. 어디서나 존재하는 소외된 무리들


인간 사회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존재하듯이, 동물들의 세계도 동일하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 폭력과 가난, 가정불화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가출을 하거나 비행청소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동물화를 통해 동물이 된 동물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을 거친 후 인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두운 가정 형편의 그늘 아래에 있는 아이들은 인간화가 되어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들은 들개무리를 형성해서 빈 농가를 털어 돈을 훔치거나, 무해한 짐승들을 죽이는 등 악행을 저지른다.


돌물로 변한 인간에게 당장 현실의 법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어차피 뒤가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사회의 법과 질서를 무시한 채 자유분방한 동물로서의 삶을 즐겼다.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에 가깝게 변해간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삶을 바꾸는 선택을 한다. 이런 아이들은 동물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뒤 좀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힘은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자라는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 공동체의 사랑과 격려, 때로는 아픈 쓴 소리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힘든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아이들이 더 좋은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4.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


머무를 곳, 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들개가 되어 방황한다. 본래는 인간이었던 이들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산과 들에 올무를 놓기 시작했다. 소극적으로는 피해 예방을 위해 덫을 놓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들개들을 불법으로 포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일 때도 소외되었던 아이들은 동물화 이후로도 매 순간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다.


돈을 훔치고 살생을 저지르던 들개무리에서 빠져 나온 국영은, 알코올중독 아버지와 집을 나간 누나가 있던 반지하의 집으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어려운 환경을 원망하며 방황했지만, 이후에는 사람들이 설치한 올무를 제거하며 들개들의 죽음을 막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어두운 시기를 겪었던 국영은 누구보다 들개들의 삶을 이해하는 아이였다. 기본적인 돌봄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같은 아픔을 겪었던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청소년문학은 훈훈한 결말로 끝났지만 현실세계는 이와는 다르다. 지금도 누군가는 질풍노도의 시기, 인생의 험난하고 쓰디쓴 고난의 풍파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다르고, 겪고 있는 어려움의 정도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방황의 기간 또한 전부 다르다. 고통의 크기와 기간에 상관 없이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인생은 모르는 법이다. 질병과 사고, 다른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든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자신의 죽음을 정확할 수 있는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방황의 시간을 겪을 수 있지만, 짐승과 다른 인간은 어두움에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본능과 탐욕에 충실한 나머지 공동체와 사회를 망가뜨리는 삶을 언제까지고 지속한다면, 영영 '인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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