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런던, 빠져든 사랑
“기분 좋은 소식 전해드립니다. 지난 며칠간 계속해서 찬 바람과 추위가 이어져서 출근길이 쉽지 않았는데요. 오늘은 날씨가 매우 화창할 예정입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산책을 즐기시는 건 어떨까요.”라는 오전 일기예보가 불현듯 떠오른다.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파란 하늘을 지그시 바라본다.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크게 들이쉰다.
그러나, 맑은 날씨와 대조적 이게도 난 아무리 숨을 들이쉬어도 가슴이 턱 막힌다.
'괜찮아, 괜찮아.' 혼자 중얼거리며 계속 걷지만, 머릿속에는 오전 출근 후 열어보았던 회사 이메일의 내용이 떠나질 않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출근하자마자, 기계적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메일 한통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발신인은 인사부 팀장이었으며, 잠시 업무적인 면담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보통은 “내방으로 와서 커피 한잔 하자.”라는 말을 편히 주고받을 정도로 꽤 가까운 사이였기에, 메일에서 느껴지는 ‘업무적인 면담’이 더욱 낯설고 불편했다. 사실 정확히는 두려웠다.
최근 새로 부임한 CEO는 미래 사업 아이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불가피한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인사팀장과 면담이 이어졌다.
“진하 대리 입사한 지 올해가 몇 년 째지? 신입사원 면접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 햇수로 5년째 맞지? 시간 참 빠르다. 그동안 고객관리 꼼꼼히 잘하고, 직원들과도 잘 지내줘서 고마워.
그런데, 이번에 구조조정 소식 들었지? 아, 나도 진하 대리한테 이런 말 꺼내기 너무 어렵다.
아무래도 진하 대리의 업무는 이제 싱가포르 지사에서 통합해서 맡게 될 거야. 그동안 수고했어.”
인사 팀장의 말이 고요한 회의실의 공기를 타고, 그저 허공에 빙빙 맴돌았다.
그리고 잠시 흘렀던 적막이 불편해서 난 “그동안 감사했어요 팀장님.”라고 대답했다.
고맙지도 않았던 당시 상황에 가장 위선적인 말을 내뱉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날씨 탓인지 오늘은 왠지 기분이 더 상쾌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나를 반겼던 햇살은 더 이상 포근하지 않았다. 되려 차갑고 야속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고작 몇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오늘 아침 내가 아팠더라면. 그래서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끔찍한 기분을 단 하루라도 미룰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이렇게까지 미치자 청계천을 따라 걷던 내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잠시 돌바닥에 주저앉아서 느리게 흐르는 청계천의 얕은 물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길 위에는 작은 물결이 일렁거리며 태양빛을 받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괜찮아, 나 괜찮을 거야.'
턱 막힌 내 감정이 뚫리길 바라며, 손을 주먹 쥔 채로 가슴을 사정없이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