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독립 근육 키우기 #3]
친정엄마는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당시 국민학교로 불린 지금의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하셨다. 큰 이모는 그 시절 교육대학교를 졸업해 선생님을 거처 교장선생님이 될 만큼 영특하셨고 하나뿐인 막내아들도 인천 명문 고등학교에 서울 소재 대학을 입학할 정도로 똑똑하셨다.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부에서 배제된 형제자매는 결국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불행히 그 부류에 속했던 친정엄마와 작은 이모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재봉일을 시작하셨다.
가족을 위해 젊은 시절을 희생해야 했던 친정엄마에겐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너무 크셨다. 작은 이모를 만날 때면 끝마치지 못한 공부 이야기를 하셨고 그 주제는 언제나 변함없었다. "우리도 공부하고 싶었는데, 우리보곤 돈 벌어야 한다고 중학교 안 보낼 거라고 하셨어. 내가 얼마나 공부하고 싶었는데" 라며 공부를 더 하지 못한 서러움 섞인 대화는 끝내 눈물로 변하곤 했다.
어릴 적 돈을 벌기 위해 등 떠밀려 배우셨던 재봉기술은 결혼 후 생계 수단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집 안 한 구석엔 공장용 재봉틀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거실에서 재봉틀이 사라진 건 친청엄마가 보험상담사 일과 야간학교를 시작하시고 한참 지나서였다. 나와 동생이 자랄 때마다 친청엄마의 활동 공간은 조금 한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집 밖으로 점점 넓어져갔다.
공부에 대한 서러움이 맺힌 사람이라면 자식들이 그 한을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곤 한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나의 학창 시절 성적이 바닥을 헤매고 있어도 공부하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동네 친구 엄마들은 친정엄마에게 “아이 저렇게 놔두고 공부 어떻게 하느냐, 공부 좀 시켜라”라며 내가 듣지 않는 곳에서 엄마에게 공부에 대한 조언을 했다 하셨다. 세명이나 되는 동갑내기 사촌에게 나는 언제나 먹기 좋은 비교 대상이었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본인의 못다 한 공부 한을 스스로 풀어나가셨다. 야간학교에서 시작한 중학교 과정은 어느새 고등학교 과정이 되었고 나도 엄마와 함께 고등학생이 되었다. 엄마는 종종 모르는 영어문제, 수학 문제를 보여주시며 어떻게 풀면 되는지 알려달라고 하셨다. 따뜻한 거실 바닥에 나란히 엎드려 한참 시간을 같이 보냈고 아직도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2000년,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엄마도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신입생이 되셨다. 40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중학교부터 시작해 그토록 원하시던 대학생이 되셨다. 첫 학기 이후엔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셨고 학기가 지난 후 공무원, 대학병원 행정직원 동기들 사이에서 행정학과 대표를 맡게 되셨다. 남들이 보기엔 늦은 나이에 그동안 이루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일 뿐이지만 나에게 친정엄마는 서울대학교 교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어릴 적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중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해내신 것이다.
지금 나 역시 친정엄마의 자기 성장의 발자취를 쫒아 가고 있다. 나는 거실 탁자 앞에 앉아 거의 매일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아이들은 책장에서 자기들이 읽을 책을 꺼내 와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내가 독서를 하고 공부하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신기하게 생각한다.
“엄마는 뭘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라고 큰 아이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거 같아”라고 대답을 했다.
“그럼 엄마가 책을 읽을 때 넌 무슨 생각이 들어?”라고 나는 아이가 책 읽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책 읽는 게 재미있나? 나도 한번 읽어 볼까? 그런 생각”이라고 아이는 대답했다.
아이의 이런 말을 듣고 [아이 앞에서 숭늉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라는 말이 바로 이럴 때 쓰는구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보여주셨던 모습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그의 자식들은 본인보다 더 나은 미래를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유명한 학원을 알아보고 대치동, 목동으로 이사를 하며 좋은 문제집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녀들은 성장을 하고 사춘기를 겪으며 점점 부모의 말에 복종이 아닌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운다. 마치 아이들의 세상의 시작은 온 우주가 아닌 부모님의 품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아이에게 생긴다면 아이를 굳이 내 앞에 앉혀 놓고 인생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 과거 내가 친정엄마가 나에게서 보고 배운 것처럼 아이들 또한 나를 보고 그대로 따라 배울 것이다.
혹시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성장과 지식을 알려주기엔 능력이 없고 알려 줄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시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절대 죄책감이나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주고 싶다. 아이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부모, 성공한 부모가 아닌 본인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부족한 것들을 갈고 닦기 위해 몇 년이란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해내 졸업장을 얻는 모습을 본다면 부모라는 존재는 그 어떤 유명한 위인들보다 더 위대한 인생의 멘토가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다. 사교육에 대한 반대 입장에 있지도 않다. 언젠가 아이가 사교육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사교육 문을 두드릴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아니 사교육을 시작한다 해도, 과거 친정엄마가 나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부모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꾸준히 성찰,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줄 것이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며 지식을 쌓은 공부에 그치지 않고 마음, 체력, 사람과의 관계 등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보여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