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오일 마사지 솔직 후기
그녀의 간증은 완벽했다.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통했다. 그녀의 이름은 부뤼타였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치앙마이 한 레스토랑이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치앙마이는 중국인 천지였다. 어디든 중국인들이 장악했다. 심지어 내가 방문했던 레스토랑도 중국인들이 이미 자리 잡았다. 나는 기다려 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주문을 받아주지 않았다. 종업원은 5명이나 있었는데 내가 불러도 오지 않았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오질 않았다. 배가 곯을 때로 곯았다. 5번 정도 큰소리로 종업원을 불렀다. 드디어 주문을 받아주었다. 감격보단 화가 치밀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주문해서 밥을 먹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석에 앉아 있던 부뤼타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부뤼타는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주문했냐는 내 질문에 부뤼타는 이미 했는데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종업원 욕을 하기 시작했다.
“5번이나 불렀는데 무시하더라고요. 도대체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중국인들이 많네요. 우린 찬밥 신세네요.”
찬밥 신세라며 웃는 그녀를 보니 내 마음도 녹았다.
“혼자 여행하세요?”
“네, 그쪽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부뤼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서부터 애를 먹었다. 독일식 발음이 꽤 어려워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다. 그녀 자신도 외국인들에게 이름을 소개하는 게 어렵다며 발음하기 힘들다면 일본식 이름으로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녀의 일본식 이름은 부리코였다. 훨씬 쉬웠다. 난 그때부터 부뤼타를 부리코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여행자와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긍정 에너지가 날 북돋아 주었다. 나는 만약 일정이 비슷하다면 함께하고 싶어 앞으로의 일정을 물어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음날 치앙라이로 갔다가 라오스로 넘어간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치앙마이 밤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치앙마이에서 뭐 하셨어요?”
“트래킹했어요.”
트래킹이라니 매홍손에서 트래킹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녀도 험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내가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정말 힘들었다며 어깨에 담이 와서 목이 안 돌아갔었다고 했다. 근데 지금은 목이 잘 돌아간다며 그 비결이 마사지라고 말했다. 그냥 마사지가 아니었다. 그녀가 받았던 건 오일마사지였다.
태국은 마사지로 유명하다. 마사지 가격이 저렴하여 태국에 놀러 오면 꼭 받는 관광 코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여행에서 마사지는 사치였다. 마사지는 안 받겠다고 다짐했건만 부리코는 강추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마사지를 안 받는다면 후회할 거라는 것이다. 자신은 천국을 맛보았다며 계속 권유했다. 그녀의 마사지 간증은 들으면 들을수록 구미가 당겼다.
“트래킹으로 목이 안 돌아갔는데 오늘 오일마사지 2시간 받으니까 목이 돌아가는 거예요. 오일을 직접 고를 수도 있어요. 또 받고 싶을 정도라니깐요.”
오일마사지에 대한 반감이 조금 있었다. 나는 인도에서 아유타야 오일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남은 오일을 두피에 두둑하게 뿌렸었다. 이건 마사지라기보단 오일 샤워였다. 마사지는 언제나 옳지만 그건 좀 옳지 않았다. 난 부리코에게 아유타야 오일마사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아요. 오일을 머리에 뿌리지 않고 향에 취해 편안해져요.”
“그러면 한번 해 볼까요?”
마사지 간증에 넘어갔다. 그녀가 마사지 받았던 마사지숍으로 찾아갔다. 내부가 청결하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지금 마사지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직원은 “안타깝지만 예약이 다 찼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마사지숍을 찾아갔지만 내부가 괜찮으면 가격이 턱없이 비쌌고, 가격이 저렴하면 내부가 깔끔하지 못했다. 가격이 저렴해도 오일마사지를 받을까도 했지만 부리코는 한사코 말렸다.
“그런 데는 저렴한 오일을 쓸 거예요. 그러면 피부에도 좋지 않아요.”
맞는 말이었다. 싼 데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필리핀 세부에서 오일마사지 받았던 사람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렴한 오일을 써서 그런지 온몸에 두드러기 났다고 했다.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팁을 비싸게 받을 거예요.”
예전에 베트남에서 마사지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저렴한 가격은 둘째치고 마사지를 다 받고 나서 팁을 마사지 비용의 2배를 요구한 마사지사가 생각났다. 어쩐지 그냥 마사지인데도 옷을 다 벗으라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마사지 값과 팁 몇 푼만 챙겨왔던 나는 팁을 더 챙겨오겠다며 부랴부랴 옷을 입고 마사지 비용만 계산하고 도망쳤다.
이렇게 계속 마사지숍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기가 아까웠다. 부리코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오늘은 마사지를 포기하고 내일 부리코가 받았던 마사지숍으로 가서 오일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우린 이야기를 더 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서 타패 게이트로 갔다.
타패 게이트는 치앙마이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예술가들이 공연하거나 상인들이 물건을 팔거나 사람들이 산책했다. 부리코와 함께 불쇼를 구경하며 맥주를 마셨다. 이 순간이 소중했다. 비록 국적은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순간을 공유한다는 이 순간이 말이다.
밤은 깊어졌고 우리는 헤어졌다. 남은 여행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는 안부를 주고받고 서로의 숙소로 갔다.
다음날, 부리코가 추천한 마사지숍에 도착했다. 오일마사지를 받고 싶다고 하니 오일 9개를 쟁반에 가져왔다. 어떤 오일로 마사지 받을지 고민되었다. 그저 이름만 적혀 있었고 효능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나는 흔하지 않은 오일로 고르고 싶었다. 효능도 좋으면 더욱 좋았다. 설명을 검색하고 싶었지만 와이파이가 가능한지도 몰랐던 상황이라 이름과 향만 맡아보고 고를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향을 계속 맡아보니 코가 마비되었다. 결국 생소한 이름으로 골랐다. 그것을 바로 베르가모트 오일이었다.
마사지사가 내 몸에 오일을 발랐다. 그녀의 손놀림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베르가모트 향은 풀어지는 근육을 구박했다.
“졸리냐? 자냐? 정신 차려! 난 베르가모트야. 지금 자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당장 일어나!”
졸음이 쏟아지려고 하면 베르가모트 향이 내 코를 찔렀다.
“방금 눈 감았어? 제정신이야? 일어나라고!”
베르가모트가 날 미치게 했다. 내가 고르지 않았던 나머지 8가지 오일의 이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에서야 불러본다. 이름만 들어도 맛있어 보이는 코코넛, 향긋한 봄 내음 라벤더, 생김새는 날카롭지만 향은 시원한 로즈마리,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로즈, 중국 차가 생각나는 자스민, 특이한 이름의 모크 플라워, 어디선가 들어 봤을 법한 시트로넬라, 평소에도 좋아하던 페퍼민트. 내가 너희들을 고르지 않았다니 참으로 우매하였도다. 이런 나를 용서해 주렴.
과거의 나를 욕했다. 차라리 이름도 생소한 모크 플라워라든가 시트로넬라를 골랐다면 이렇게까지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몇 시간만이라도 앞으로.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베르가모트는 날 핍박했다.
“니가 지금 홀딱 벗고 다른 생각을 하니? 내 생각만 해.”
집착이 강한 베르가모트. 이건 향기가 아니라 냄새였다. 아침에 잠을 깨우는 수탉 같은 오일. 어떤 쌍욕을 해도 후련해지지 않는다.
끝내 마사지가 끝났다. 기대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저 400바트를 쓴 흔적만 있었을 뿐이었다. 마사지를 강추하던 부리코는 잘못이 없었다. 이 오일마사지에서 잘못한 게 있다면 베르가모트, 너였다. 400바트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2,000원이었다. 한국에서 이 가격에 오일마사지 받기란 힘들지만 베르가모트가 날 힘들게 했다. 누군가 베르가모트로 오일마사지 받겠다면 뜯어말려야 한다. 아니, 마사지숍에서 베르가모트 오일을 없애야 한다. 베르가모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온다. 제기랄! 베르가모트!
숙소로 돌아와 곧바로 샤워했다. 어떻게든 베르가모트 향을 내 몸에서 지우고 싶었다. 자면서까지 베르가모트와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떼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자면서도 내 몸에서 베르가모트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