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면 감천인가요
치앙마이를 5년 전에 다녀온 경험이 괜한 부심을 일으켰다.
내가 말이야, 옛날에 치앙마이 좀 다녀보았지. 치앙마이 가 봤어? 가 봤다고? 언제? 5년 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지. 그걸 알려나 몰라. 요즘 여행자들이란. 쯧. 중국인 여행자가 들어오고 나서 옛날의 치앙마이는 사라졌어.
치앙마이부심은 악몽의 마사지를 받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내가 알던 치앙마이는 유적 말고는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어느 절 안에서 혼자 커피를 팔던 아줌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노상 가게가 즐비했다. 이걸 보려고 치앙마이에 온 게 아니었다. 난 그 아줌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말 하나 통하지 않았던 사이지만 매일 찾아갈 때마다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다른 곳에서 타이식 커피를 마셔보았지만 그 아줌마의 커피가 최고였다. 아줌마는 단골의 입맛을 알고 있었다. 얼음은 적게, 커피는 많이, 연유도 듬뿍 넣어주는 센스! 내가 “원 커피, 프리즈.”라고 또박또박 말하면 척척 커피를 만들어 주셨다. 맛있게 타진 커피를 한 잔 들고 벤치에 앉아 흔들리는 나무를 감상했다. 이제는 맛볼 수도, 볼 수 없는 커피. 안녕, 나의 치앙마이 커피여.
옛날에는 이런 풍경이었나 싶을 정도로 술집에 먼 서양에서 온 할아버지가 태국에서 사는 젊은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신다. 예전부터 은퇴하고 온 노인이 태국으로 와 즐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았나 생각이 든다.
부리코와 할아버지와 아가씨는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을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저들은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눌까요? 모국어가 다르잖아요.”
“잘 봐요. 저 둘은 같이 앉아 있지만 말은 하지 않고 맥주만 마시고 있잖아요.”
“맥줏값이 상당하겠어요. 비즈니스 관계가 딱 맞네요. 서로 원하는 게 다르잖아요.”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달랠 누군가가, 아가씨는 돈이 필요한 거다. 비즈니스 관계도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관계였다.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아까웠다. 그들을 나쁘다고 욕할 수 있을까. 보편적인 비즈니스는 아니었지만 면밀히 따지면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왜, 지나가다가 본 내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까.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결국 난 되도록 할아버지와 아가씨가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이던 술집을 피해 돌아다녔다.
추억의 장소, 한 군데를 더 가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물세례 맞고 팔찌 사기 당한 절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위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도 절이 있다니 하며 들어갔는데 스님 한 분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그냥 목례를 하고 스쳐 가려고 했는데 이놈의 입은 쉬지 않았다.
“Hi.”
스님은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 소원을 함께 기도해 주겠다며 작은 절로 데리고 갔다. 나는 속으로 스님이 함께 소원을 기도해 준다니 기뻤다. 그 마음씨가 착해 보였다. 종교를 가진 몇몇은 인자했다. 그도 그런 부류라 생각했다. 인자한 스님, 풍채도 인자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원을 빌기 위해서 거행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는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실 한 가닥을 내 손에 쥐여 주며 꼬옥 잡고 있으란다. 눈을 감고 소원 한 가지만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며 눈을 감고 실을 잡았다. 오직 한 가지 소원을 염원해야 했다. 단 한 가지 소원. 꼭 이루어질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계속 소원을 빌었다.
스님은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나는 더욱더 소원을 되뇌었다. 그러다 갑자기 물방울이 얼굴에 닿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한두 방울이 아니었다. 이건 세수하는 것처럼 얼굴을 적셨다. 스님이 나한테 계속 소원을 생각하라고 했다. 소원을 계속 속으로 새겼다. 아, 물이 또 얼굴을 강타하네. 그래도 소원을 빌어야지. 아, 또 물이...
불교에서 세례받을 때 물을 쓰던가. 아리송했지만 소원을 빌던 인고의 시간은 지나갔다. 스님은 나에게 눈을 뜨라고 말하고 나와 스님이 잡고 있던 실을 내 팔에 달아주었다. 소원 팔찌란다. 난 새로운 팔찌가 생긴 게 기뻤다. 왠지 나의 소원도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공짜 소원은 없는 법. 세상사 기브 앤 테이크였다. 그는 나에게 기부함을 들이밀었다. TV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에서 연예인이 힘들 게 번 돈을 기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동전 몇 개를 넣으려고 하니 스님은 기부함을 쓰윽 뺐다. 그리곤 안을 보라며 기부함 안을 가리켰다. 그곳엔 고액의 지폐가 있었다. 100바트와 500바트, 그리고 1000바트까지 있었다. 최소 100바트 기부하라는 뜻이었다. 100바트면 팟타이가 몇 개인지 아시는 건가요, 스님.
동전을 거두고 지페를 확인했다. 제발 작은 지폐가 있었으면 하며 기대했다. 하지만 100바트가 제일 적은 금액의 지폐였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끝내 100바트를 기부했다. 내 팔에 찬 팔찌는 100바트짜리였고, 내 얼굴에 맺힌 물도 100바트짜리였다. 100바트에 사기 당하는 100가지 방법 중 하나를 배웠다고 치자. 그래도 100바트는 너무했다.
100바트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태국 물가로는 꽤 가격이 있는 편이었다. 지금엔 웃으며 말하지만, 100바트를 팔찌로 날린 나는 그날따라 지나가며 본 팟타이의 가격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치앙마이부심 다 필요 없었다. 게스트하우스 친구라곤 모기밖에 없었다. 모기와 떨어져서 지내고 싶은데 어딜 가나 모기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다. 밤마다 나를 찾아와 “Hey, girl.” 하며 내 피를 빨아먹었다. 갈수록 나의 다리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모기라도 찾아와 줘서 견딜 수 있었다. 외로움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고통이 필요했다.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삶도 좋았지만 그 유유자적도 정도껏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내향적 인간도 사람 냄새가 그립다. 사람 피 냄새가 아니라.
내가 왜 치앙마이에서 5박 하겠다고 했을까.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다. 짧게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삶이 안정적인 삶이었다. 내일 해야할 일이 있는 삶이 그리워졌다. 그렇다고 막내 작가를 하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다른 직업을 갖고 평온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매일 정시 출근에 정시 퇴근하며 살아가는 사무직이 부러웠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타인의 삶이 눈앞에 그려졌다. 만약에 내가 사무직을 하게 된다면 퇴근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행복한 기분으로 잘 살 수 있을 텐데...라는 막연한 상상이 들었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양이가 보고 싶어졌다. 사료를 바꾸면 보이콧 하듯 토하는 그놈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누워서 그 녀석들의 털을 쓰다듬어 주고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기는 순간, 낮잠의 달콤함이 아른거렸다. 태국에서는 맥주 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에 맞춰 세븐일레븐에 가 맥주를 사서 집에서 한 모금 마시면 그 시간도 행복 그 자체였다. 심지어 그걸 보며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금상첨화,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얻을 수 없는 것을 희망하는 것도 지옥이었다. 지금 당장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요즘에 치앙마이에서 핫하다던 캐년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투어=돈’이었다. 여윳돈은 있었지만 그 돈을 무턱대고 쓴다면 나의 도피 여행은 금방 끝날 거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래도 이 외로움을 돈으로 해소할 수 있다면 한번 저지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래킹을 해 볼까 하며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참가하는 투어는 현재로는 없다는 이야기뿐. 간다면 외국인과 함께 가야 했다. 한국인이 만나고 싶다고! 시방 난 지금 외로운 짐승이여! 결국 씁쓸한 대답을 품에 안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외로운 짐승 한 마리가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다가 99바트 샤브샤브 뷔페가 있어 그곳을 찾아갔다. 꽤 저렴하고 맛있었다는 리뷰도 미리 봐 두었기에 기대가 되었다. 줄 서서 기다려서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서 샤브샤브 뷔페라니 사치였지만 꽤 맛있었다. 내가 원하는 고기와 야채를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이게 단돈 99바트라니 믿을 수 없었다. 태국 물가 만세를 외치며 냠냠쩝쩝 후식까지 배 터지도록 먹었다.
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하려고 하니 199바트를 달라고 한다. 왜? 왜?! 이유를 물으니 혼자서 먹어서 100바트가 추가되었단다. 아, 혼자인 것도 억울한데 돈을 더 줘야 한다니. 억울함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2~4명이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에 혼자 독차지했으니 자릿값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블로그나 리뷰에서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지출에 마음이 아팠다.
내 도피 여행은 도피 여행답지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