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한국인인데...
한국인을 못 만나 입에 거미줄이 처진 기분이었다.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가랑비처럼 스멀스멀 적셔오는 감정은 날 처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중국인 사이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나는 왜 그들을 못 마주치는지 분석했다.
첫 번째로 그들이 노는 곳은 주로 님만해민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치앙마이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번화가였다. 그곳에서 서성거리면 마주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차 있었지만 트래킹 신청하러 님만해민에 위치한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했을 때, 깨달았다. 정말 한국인이 없구나.
그렇다면 두 번째로 한인들이 머물 만한 곳은 반캉왓이었다. 반캉왓은 절 근처에 있는 예술가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로 아기자기한 카페, 식당이 많았다. 종종 플리마켓을 여는 곳이었다. 그곳에 한인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서 한국인이 꽤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침 행사도 있겠다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명한 곳이 아니다 보니 썽태우를 잡아서 탈 때마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최대로 부른 값이 300바트였다. 300바트는 너무 심했다. 빈곤한 나에게 이렇게까지 비싼 가격을 부르는 썽태우 기사의 얼굴이 못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1시간가량 뙤약볕에 적당한 썽태우를 찾아다니다가 나와 협상하기까지 했다.
‘이정도까지 고생했으면 50바트에 가는 썽태우는 없어. 외국인이니까 외국인 물가로 여행하는 수밖에 없지. 대강 어떻게 가는지만 알면 올 땐 걸어서 오면 되지 않나. 그러니 대강 타, 권진하야!’
그러다가 100바트에 그곳에 가겠다는 썽태우 기사를 만났다. 그는 쿨하게 100바트를 불렀다. 기사의 눈빛은 진지했다. 마치 그는 나 혼자만 데려다주고 쓸쓸히 돌아올 각오가 되어 있는 것처럼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난 알았다는 말과 함께 썽태우에 올랐다.
나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 반캉왓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서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다 한국인을 발견하면,
“호, 혹시 한국분이세요?”
던질 멘트까지 생각해 두었다. 꽤 기세등등했다. 썽태우에서 내려서 절을 지나 반캉왓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유명하다는 국수 뷔페에서 1차로 배를 채우기로 했다. 넓진 않지만 다양한 면과 국이 있었다. 다른 반찬들도 꽤 괜찮았다. 사장님은 내가 한국인에다가 혼자 왔다고 하니 신경 써 주셨다. 먼저 그릇은 이걸 사용하고, 이거랑 이걸 같이 먹으면 맛있다, 물 가격은 얼마이며, 후식 가격은 얼마다 등 요목조목 알려주셨다. 나는 충분히 설명을 듣고 접시를 집어 뷔페를 돌아다녔다. 국이 무엇이 있는지 보니 선지가 들어간 붉은 탕이 있었다. 이거다. 한국의 맛, 선짓국이었다. 한 입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런 맛이 그리웠다. 나는 3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먹으면서 한국어가 들리는지 귀를 쫑긋 세웠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짓국은 핵존맛이었다. 배가 불러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을 때가 걱정이 없고, 모든 게 만사형통이었다. 배가 고프면 괜히 짜증이 치솟으니 간간이 음식으로 위장을 달래줘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한국인 만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간직한 채로 반캉왓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것부터 중고 서적, 중고 옷을 파는 모습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도 좋았다. 평화로운 순간을 나도 평화로워 반캉왓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제 배를 채웠으면 소화시킬 겸 커피를 마실까 하며 카페로 들어갔다.
이미 한국인을 찾는 건 거의 포기했다. 더는 한국인을 만날 거란 희망으로 스스로를 고문하지 않기로 했다. 만나면 좋고, 못 만나면 말자는 마음이 70%정도 차지했다. 이제 커피를 마시고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되었다. 다시 100바트를 주고 숙소로 돌아오긴 아쉬웠다. 하지만 걸어오자니 꽤 먼 거리였다. 한국인을 포기하니 돌아가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중심가로 걷다 보면 썽태우를 저렴하게 탈 수 있을 거란 기대로 길을 나섰다.
무작정 걷다 보니 나오는 카페, 구멍가게가 꽤 예뻤다. 주변은 나무로 우거져 있었고, 물 머금은 풀냄새가 풀풀 풍겼다. 걷는 게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정도로 피곤하지 않았다. 혼자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느긋하게 걸어갔다. 꽤 걸으니 고속도로 같은 게 나왔다. 이곳을 걷는 건 조금 위험해 보였다. 최대한 가장자리로 이동하여 걸었다. 호텔 하나가 보였다. 거기에서 썽태우를 타고 돌아가기로 정하고 지나가는 썽태우를 붙잡았다. 50바트를 불러서 기분 좋게 시내까지 들어왔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기 보다 썽태우를 잡는 어부가 된 날이었다.
치앙마이에서 유명한 야시장은 토요 시장과 일요 시장이었다. 일요 시장이 규모가 꽤 커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엄마와 어린 딸이 길거리에서 엽서를 팔았다. 어린 딸이 직접 그린 엽서를 팔고 있었다. 이 아이의 장래가 그려졌다. 특징을 잘 잡아서 그리는 꼬마의 솜씨는 나의 주머니를 열게 했다. 나는 절이 그려진 엽서를 고르고, 돈을 지불하려고 손을 뻗자 엄마가 딸에게 정중히 돈 받으라며 제스처를 취했다. 그때 딸의 표정을 보았는데 자신의 그림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해 보였다. 단돈 25바트에 나도 행복을 얻었다. 나중에 10년이 지나서 그 어렸던 꼬마가 커서 그림을 계속 그리고, 20년이 지나서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 손에 들린 엽서는 예술이었다. 다른 게 예술이 아니었다. 예술은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거창하다고 생각할 테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마시는 컵, 길을 걷다 보는 풍경, 내 손에 들린 엽서 모든 게 예술이었고 그 자체였다. 모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용기가 생겼다. 태국 여행하며 그린 그림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를 좋아해 주고 이해해 줄 것만 같은 마음이 치솟았다. 나는 숙소로 달려가 가지고 온 파레트와 붓, 종이를 챙겨서 일요 시장으로 다시 향했다.
대강 앉아서 그림을 팔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1장에 5THB라고 종이에 써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팔았다. 첫 손님은 중국인 가족이었다. 내 그림을 보더니 아이가 관심을 가졌다. 나는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이라며 설명해 주니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현지인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팔면 안되요!”
“네?”
“여긴 통로라구요. 팔지 마세요.”
통로가 분명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이곳은 통로니까 나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거기서 무언가를 판다는 게 아니꼽게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텃세 아닌 텃세라 여기며 그림 한 장만 팔고 타패 게이트로 나와야 했다.
부리코와 함께 맥주를 마셨던 그곳이었다. 나와서 보니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팔찌를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다시 그림을 팔기 시작했다. 나를 신기하게 본 상인이 내 옆에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보다 어려 보였다. 그녀가 주로 파는 물건은 나무로 만든 해골이었다. 나는 적적하기도 했기에 그녀의 시선에 그저 눈웃음으로 응대하고 그림을 그렸다. 내가 신기했는지 그녀가 갑자기 핸드폰을 나에게 들이댔다. 딱 보아하니 이걸 그려달라는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며 그녀의 사진을 따라 그렸다. 그러더니 그 여자와 주변 상인들의 관심을 한꺼번에 받았다. 영어가 통하는 상인은 많지 않았다. 나는 한국어로, 그들은 태국어로 말하며 의사소통을 했다. 가끔 짧은 영어를 섞어가면서 말이다. 그림이 완성되고 나는 그림을 의뢰했던 여자에게 가 그림을 건넸다. 나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 여겨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그녀는 5바트를 주었다. 난 괜찮다고 손사랫짓했지만 그녀는 완강한 표정으로 받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돈을 받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그녀는 해골을, 나는 그림을 팔았다.
“어머, 여기서 이렇게 그림을 파나 봐?”
나를 보고 어느 한국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때를 놓칠세라 바로 대답했다.
“네, 맞아요.”
한국인은 깜짝 놀라며 여기서 살고 있냐는 등의 질문을 건넸다. 나는 여행 와 그렸던 그림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하는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말을 몇 마디 주고받고, 그림도 팔았다.
정작 한국인을 만나기 위해서 노력했을 땐 못 만났던 한국인을 이렇게 마주친 사실이 조금 허무했다. 하지만 그 허무함은 기대감으로 바뀌어 내 그림도 팔고, 한국인도 만나고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꽤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