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곳에 골든트라이앵글이 있다

호갱 여행자

by 진하하하하

#1

전날 맥주가 화근이었나? 알람을 맞춰놓으면 뭐하나, 다시 끄고 5분만, 5분만 하다가 1시간을 더 잤는데……. 골든트라이앵글에 가는 버스는 시내 버스터미널에서 1시간마다 한 대씩 있다. 나의 계획은 아침 8시 20분에 버스를 타는 거였다. 그러려면 7시 20분에는 나왔어야 했다. 걸음이 느린 아이는 7시 50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30분 만에 도착할 자신이 없었다.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나의 계획은 아래와 같았다.

PLAN A. 성태우를 잡아서 버스터미널까지 간다.

PLAN B. 성태우를 잡아서 버스터미널로 간다.

PLAN C. 무조건 성태우를 잡아서 버스터미널까지 간다.


지금 이 시간이면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들이 성태우를 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정말 성태우를 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근데 아무리 걸어도 성태우는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쫄깃해졌다. 8시 20분 버스를 못 타면 9시 20분 버스를 타야 하는데 골든트라이앵글에 도착하면 11시가 다 되어갈 것이다. 그러면 점심시간이고 밥도 먹어야 하고 가장 더워질 시간에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오늘 계획에 플랜 B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계속 시간은 지나간다. 1분 1초가 아까웠다. 운동할 때에는 1초도 0.1초, 0.2초로 나눠서 지나가는 게 꼭 이렇게 바쁠 때 1분은 금방 지나간다.

내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성태우를 찾는 모습을 이상하게 본 현지인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탄 채 날 따라왔다. 그는 나에게 "뚝뚝?"이라며 뚝뚝을 찾는지 물어보았다. 뚝뚝은 무슨. 난 성태우를 찾고 있는데 자꾸 뚝뚝 거리며 알짱거렸다. 뚝뚝은 바가지를 씌운단 말이다! 완전 관심 밖이라고! 난 "노 뚝뚝, 성태우!"라고 말하고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그도 별 신경 안 쓰는 듯이 지나쳤다.

이제 13분 남았다. 13분. 아직 절반도 못 왔다. 난 이대로 9시 20분 버스를 타게 되는 건가. 정녕 그런 것인가. 청천벽력 같은 순간이었다. 그때 그는 혜성처럼 나타났다. 뚝뚝 기사! 좀 전에 나에게 "뚝뚝?"이라며 성가시게 했던 남자였다. 그는 뚝뚝 기사였다.

이제 와 생각하면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마치 나와 밀당하듯 뚝뚝을 물어보았고, 내가 시급해 보였는지 나의 의사를 무시한 채 뚝뚝을 끌고 내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다. 난 선택권이 없었다. 이걸 타서라도 8시 20분 버스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시가 바쁜 이 상황에서 그는 가격 흥정을 시도했다. 50바트를 부르던 그 남자를 보니 얄미워 보였다. 난 20바트라고 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어쩔 수 없다. 30바트! 그는 OK를 외쳤고, 난 얼른 뒷좌석에 올랐다.


‘아. 어머니, 아버지, 부처님, 하느님, 시바신님. 30바트를 주고 뚝뚝 탔으니 8시 20분 버스 타게 해 주세요.’


난 늦었다는 몸짓을 하며 빨리 가달라고 했다. 그러나 신호등이라는 신호등은 다 걸리고 심지어 걸어서 가면 직진인 거리를 일방통행이라 우회해서 가야 했다. 치앙라이 시티투어 하는 기분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들어서자마자 준비해둔 돈을 뚝뚝 기사에게 쥐어주고 난 골든트라이앵글 행 버스를 찾았다. 그때 시간이 8시 25분이었다. 블로그에서 보기론 인원이 다 찰 때까지 좀 기다린다고 했었다. 그러니 탈 가능성이 있……는 줄 알았다. 기다리긴 개뿔. 이미 버스는 떠나고 그 빈자리에는 쓰레기만 날렸다.

결국 나는 55분을 기다려 9시 20분 버스를 타야 했다.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시키고 꼭꼭 씹어 먹었고, 근처에 가장 저렴한 생수를 찾아다니고 물을 천천히 마셔도 30분이나 남았다. 30분 동안 이불 속에서 5분만, 5분만 하며 늦잠을 잤던 과거의 나를 질책했다.

희한하게 나 자신을 질책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변호하게 되었다. 늦잠 잤지만 꿀잠이었다는 둥 뚝뚝을 타서 많이 걷지 않았다는 둥 관대한 나를 볼 수 있었다.

9시 18분이 되자 골든트라이앵글 행 버스가 터미널 안으로 들어와 주차했다. 난 얼른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얼른 출발해라. 얼른.’


그러나 버스는 20분이 되어도 30분이 되어도 출발하지 않았다. 여전히 빈자리가 많았고 50분이 돼서야 2자리를 남기고 출발하였다.


#2

도착하니 12시 되기 10분 전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골든트라이앵글은 나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소설 "치앙마이"에 나왔던 라후족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편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라후족은 아편으로 인해 망하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슬픈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이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 덕분에 골든트라이앵글이 심심하지 않았다. 강줄기로 나누어진 세 개의 나라는 태국을 비롯한 미얀마, 라오스였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배로 라오스까지 가서 구경하는 게 유명했다. 뱃삯과 입장권만 지불하면 여권을 보증으로 1~2시간 정도 다녀올 수 있었다.

난 나홀로 여행자였다. 한 뱃삯이 작은 배 기준으로 500바트 정도였는데 천막도 없는 통통배였다. 그 배의 정원은 운전사 빼고 4명이었다. 4명을 모으면 굉장히 저렴하게 탈 수 있었다. 125바트였다. 정말 저렴한 가격이었다. 이 가격에 탄다면 난 그야말로 성공적인 투어였다. 그래서 여행자들을 기다렸다. 기다렸는데 다들 미리 투어 신청을 해서 온 단체 여행자들이었다.

뙤약볕에 30분가량 멍 때리며 나름 일행을 구해 보겠다며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JOIN FOR BOAT라고 적어 놨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팔이 빠지게 들고 있었지만 별 수확이 없었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중년의 남성과 여성을 보았다. 딱 보니 중국인 같았다. 남자는 보트를 대여해주는 업체와 가격협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그곳에 가 슬그머니 나도 껴달라고 했다. 그러니 그 남자가 알겠다며 기다려보라고 했다. 난 그 남자와 그 옆에서 지켜보는 여자가 있어 단둘이서 여행 온 것 같았다. 근데 협상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 남자는 “1명당 250바트. 더 이상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며 제시하는 게 아닌가. 250바트? 장난하나? 우리 세 명이서 각각 250바트라니.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었다. 3명이면 500바트짜리 보트를 약 167바트에 탈 수 있는데 말이다. 난 여기서 끼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 지금 뭐하는 것인가 차라리 내가 가격 협상하겠다고 할걸. 온갖 잡생각이 들어 날 미치게 했다.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는 계속 1인당 250바트. 계속 협상을 시도했지만 뱃삯은 1인당 300바트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이곳에 오기 전 읽었던 꿀팁이 떠올랐다. 1인당 가격으로 협상하지 말고 뱃값으로 흥정하라던데... 그런 꿀팁을 중국어로 설명해 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결국 300바트에 협상을 마무리하였다.

망했다.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오래 기다렸던 것일까? 뙤약볕에서 함께할 여행자들을 구했던 시간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속상했다.

그런데 남자는 계산기에 300 곱하기 20을 눌렀다. 왜 20을? 잘못 누른 거겠지 생각했는데, 그는 복대에서 6,000바트를 꺼냈다. 응? 그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300바트 내면 된다고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응? 이건 무슨 상황이지?

어디선가 중국인 어르신들 18명이 나타나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를 태울 배는 내가 봤던 통통배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등받이도 제대로 있고 멀미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비, 햇빛을 막아줄 천막이 있었다. 역시 중국인들은 스케일이 달라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천막 없는 통통배를 어떻게든 타려고 아등바등할 때, 중국인들은 좋은 배를 좋은 값에 타기 위해 가격협상을 하였다. 내가 언제 여기서 이런 좋은 배를 타보겠는가? 그것도 300바트에! 난 대박을 연신 외치며 중국인들과 함께 라오스로 이동했다. 사랑합니다.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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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뱃삯에는 입장권이 불포함이라 도착해서 입장권을 사고 라오스를 구경했다. 여권에는 찍히진 않지만 이렇게 라오스에 넘어와 라오스 맥주인 비어라오도 마시고 강바람도 쐬었다.

돌아와서는 중국인들에게 감사하다며 나의 짧은 중국어를 뽐냈다.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서로 갈 길을 갔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는 중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컸었다. 중국인은 더럽다, 중국인은 매너를 모른다, 중국인은 시끄럽다 등 다양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중국인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이 매력적인 나라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게 치앙라이에서부터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골든트라이앵글에서의 나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숙소로 돌아와 다음 일정을 고대했다. 내일은 바로 체크아웃을 하고, 치앙라이의 대표 상징물 화이트 탬플과 그것에 맞서는 블랙 하우스를 구경한다. 이번에는 늦잠 자지 않겠노라며 또 맥주 1병을 마시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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