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치앙라이, 시작부터 좋은데

치앙라이 가성비 갑 게스트하우스

by 진하하하하

#1

치앙마이 버스터미널에서 치앙라이 버스터미널까지 4~5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가는 내내 숙면을 취했다. 숙면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잘 정비된 도로였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방콕에서 매홍손, 매홍손에서 빠이,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도로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푹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기도 했고, 치앙라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치앙라이 터미널은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시내에, 다른 하나는 시내 외곽에 있다. 보통 시내에 내려주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도 어플을 켰다. 해외 여행할 때 유용한 어플이 몇 가지가 있는데 개중 〈맵me〉와 〈구글 지도〉를 많이 사용했다. 맵me는 미리 지도를 저장해 놓으면 오프라인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 게스트하우스 위치가 표시되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할 때 자주 애용했다.

이번에 머물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Chian guesthouse〉다. 내 사랑 Chian. 가 보기도 전에 사랑에 빠졌던 게스트하우스였다. 이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 준 사람은 바로 브루스 할아버지였다. 그는 치앙라이에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맛집을 꿰차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치앙라이의 게스트하우스를 추천받았다. 그가 말하길 저렴하고 쉬기 좋은 곳이라며 엄지 척 올리며 소개해 주었다. 그 말에 나는 도착하기도 전에 설렜다.

막상 버스터미널과 꽤 떨어져 있는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장딴지의 핏줄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하지정맥류 걸리는 게 아닌가 염려되었다. 나는 하지정맥류에 걸릴 바엔 썽태우를 타는 거로 자신과 합의했다. 내 다리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2

Chian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가. 치앙마이와 스펠링이 비슷하니 나는 대강 “치안”이라고 말했다. ‘ㅇ’만 ‘ㄴ’으로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썽태우 기사에게 “치안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말했고, 그는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나를 태웠다.

제대로 가는지 걱정이 되어 GPS를 켰고, 그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Chang guesthouse였다. 치안과 창은 헷갈리기 딱 좋았다. 나는 썽태우 기사에게 이곳이 아니라 Chian이라고 다시 설명해 주었고, 그는 추가 요금 없이 데려다주었다.


#3

본격 게스트하우스 예찬은 지금부터다. 순탄하지 않았지만 무사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리셉션에 가 싱글룸이 있는지 물어보려는데 바로 옆에 가격표가 적혀 있었다. 싱글룸 1박에 180바트였다.


“싱글룸 있나요?”

“네.”

“볼 수 있을까요?”


직원은 자연스럽게 키를 꺼내곤 방을 안내해 주었다. 방으로 가는 길에 이게 웬걸? 수영장이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수영장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가격이 180바트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싱글룸이라고 보여준 방의 침대는 무척 컸다. 안에 개인 화장실이 있었고, 휴지와 수건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문밖에 개인 테이블도 구비되어 있어서 맥주 한 잔 마시기에 딱 좋았다. 정말 180바트인지 믿기지 않았다. 나는 새초롬하게 가격을 물어보았다.


“얼마예요?”

“한 박에 180바트예요.”


지저스! 무슨 말이 필요해. 내가 가격표를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여태껏 태국에서 머물었던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숙소다. 2박 하겠다고 이야기하곤, 바로 계산했다.

2박을 결제하고 잠깐 방에 누워 지친 다리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일정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치앙라이에서의 시간이 많지 않았다. 치앙라이에서 보고 싶은 게 많았다. 투어를 신청할까도 생각했는데 투어를 신청하면 정해진 루트대로 이동해야 하고, 찍고찍고찍고 하는 여행이 되어 피곤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하루에 한 코스씩 정해서 거기에만 충실하자라는 주의라 투어는 고민 끝에 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심지어 투어 비용도 생각보다 비쌌다. 제일 저렴한 투어가 1,300바트였으니 고민할 거리도 없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화이트 탬플이나 골든 트라이앵글을 보러 가기엔 늦었다. 시내로 나가 야시장을 구경하고, 버스 티켓도 알아보기로 했다.

시내로 나가는 방향을 묻기 위해 리셉션으로 갔다. 직원은 친절하게 길치인 나에게 지도를 그려주었다. 알아보긴 어려웠지만 설명을 함께 들어서인가 대충 다리를 건너고 쭉 직진하면 야시장이 나온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다는 것과 방콕 가는 티켓은 거기서 살 수 있을 거라는 정보도 얻었다. 심지어 내가 길을 헤맬 것을 걱정한 직원은 종이에다가 태국말로 “버스터미널이 어디에 있나요?”라고 적어주었다. 그녀는 친절의 결정체였다.


#4

난 룰루랄라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다리를 건너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니 학교 같은 건물이 보였고 옆에는 식당과 인터넷 카페, 오토바이 정비소가 있었다. 인터넷 카페 안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PC방과 흡사했다. 남자아이들이 사장님 의자라 불리는 의자에 앉아 마우스와 키보드를 열심히 누르고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나 게임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까 목이 말랐다. 몇 시에 나왔는지 시간을 봐둘 걸 그랬다. 족히 30분은 걸은 기분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가깝다고 했는데 안 가까운 것 같은데? 성태우를 타야 할 것만 같은 거리인데? 다행히 세븐일레븐을 발견하고 마른 목을 축이고 지도를 따라 다시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여러 차례 길을 잃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이제 치앙라이에서 길은 안 잃을 것 같았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방콕행 버스 티켓을 구매하였다. 시간은 막차로 예약했다. 오전에는 화이트 탬플과 블랙 하우스를 구경하고 잠깐 카페에서 쉬었다가 저녁에 버스를 타면 되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무사히 걸어온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버스 티켓을 지갑에 넣고 원래 목적인 야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어디선가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배낭여행을 하며 다져진 눈칫밥이었다. 치앙마이에서 본 일요시장과 달리 규모는 작았지만 푸드코트와 어우러진 야시장 모습은 마냥 신기하였다.

뭔가 사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이제 방콕으로 돌아가는 일정이기 때문에 기념품 하나 정도는 사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산은 넉넉지 않고, 고심 끝에 고른 건 핸드폰 고리였다. 고산족 여인들을 닮은 핸드폰 고리였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가방에 달았다.


#5

윈도쇼핑을 원 없이 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푸드코트를 구경하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었다. 혼자 먹는 외국인들도 보였지만 왠지 어르신들만 혼자 먹는 기분이었다. 젊은 외국인 중에서 혼자 먹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혼자 먹는 사람들은 대체로 맥주와 함께 식사 중이었는데, 푸드코트의 맥주 가격이 엄청 비쌌다. 난 마실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자린고비의 굴비처럼 맥주를 바라보며 물을 마셨다.

그래서 심도 있게 저녁 메뉴를 골랐다. 푸드코트를 찬찬히 살피면서 내 위장이 가장 원하는 메뉴를 찾아 돌아다녔다. 개중 하나가 내 시선을 빼앗았다. 돼지 내장 국수! 어떤 사람은 비위 때문에 먹지 못하는 돼지 내장이 나에게는 맛있는 식재료 중 하나다. 난 돼지 내장 국수를 두 손으로 조심히 옮겨 테이블로 갔다.

나와 돼지 내장 국수. 돼지 내장 국수와 나. 지금 이 순간은 우리 둘만 있었다. 난 젓가락을 오른손에 숟가락을 왼손에 쥔 채 미소를 지었다. 난 돼지 내장 중 쫄깃쫄깃한 곱창을 숟가락에 올리고 국물을 살짝 떴다. 그리고 국수 한 가닥도 함께 올렸다. 이제 내 입으로 꺼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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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박 맛있어! 물개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옆 테이블 사람들이 날 보고 웃었다. 부끄러웠지만 국수는 맛있었다. 가난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하는데 존맛도 감출 수 없다. 여기에 맥주까지 있었으면 최고의 저녁 식사이었을 텐데... 맥주앓이는 어쩔 수 없었다.

반만 즐거웠던 식사를 마치고 어두워진 밤거리를 걸으며 치앙라이 시내를 둘러보았다. 개조차도 짖지 않는 밤, 평화로운 시간이라 생각했다. 여태껏 매홍손, 빠이, 치앙마이에서 느껴보지 못한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 동네였다. 늦게까지 여는 슈퍼마켓이며 군데군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모습이 약간은 낯설게 느껴졌다.

여행지와 다른 풍경이 우리 동네처럼 익숙해졌다. 도시의 골목, 그 골목을 지나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이 정겹게 느껴졌다. 오늘 밤에는 이 두근거림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내일은 더욱 즐거운 일이 생길 거라고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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