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화이트 탬플과 블랙 하우스

치앙라이의 마지막 날

by 진하하하하

#1

북부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면서 꽤 찝찝했다. 여유롭게 돌아다니길 좋아하는지라 치앙라이 일정은 나에게 빡셌다. 북쪽이라고 해도 낮에는 상당히 더웠다. 강한 햇빛 때문에 땀이 주륵주륵 흘렀다. 화이트 탬플을 보겠다는 굳은 의지가 없었더라면 아무 커피숍이나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었을 것이다.


#2

체크아웃을 하고 바리바리 싼 배낭을 메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근처에 물품 보관하는 곳이 있어서 다행히 화이트 탬플과 블랙 하우스를 구경할 때 챙겨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5시 30분까지 맡아줄 수 있다는 말에 일정이 촉박해질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달리 맡길 곳도 없었기에 5시 50분까지 오면 안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맡아준다고 해서 짐을 맡기고 화이트 탬플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3

치앙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화이트 탬플이었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구경하러 온다. 이곳을 지은 남자는 꿈속에서 죽은 어머니가 나타나 자신이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으니 현세에서 구해 달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를 위해 이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이런 스토리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는 것 같았다.

순백색의 사원을 보고 있으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사진을 찍으면 아름답게 나오기까지 하니 연신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점심 시간에는 방문객의 출입을 막기 때문에 그때가 사진 찍기 좋았다. 이 사원이 다른 사원과 달리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적인 요소도 함께 꾸며놓았다. 배트맨, 아이언맨 등 하얀 장식품이 곳곳에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지옥을 형상화한 곳이었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좌우로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손이 꾸며져 있다. 손짓 하나하나가 그들의 절망, 처절함, 괴로움 등이 묘사되어 있었다. 개중 웃음을 자아내는 손 하나를 발견했다. 가운뎃손가락만 핀 손이었다. 그 손가락이 눈에 띌 수 있도록 손톱에 반짝이는 장식을 붙였다. 마치 매니큐어를 바른 것처럼 말이다. 손짓 하나에 많은 말을 담겼다.


‘어이, 너는 지금 천국 가냐? 이거나 먹어라!’

‘예. 예. 천국 가는데 이쯤은 먹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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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행한 시기가 중국인 여행객들이 많을 시기였다. 어딜 가나 중국어가 들렸다. 심지어 나에게 중국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강 눈치껏 행동했다. 여기서 굳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서로 즐겁게 사진을 찍으러 온 곳이니까 사진만 잘 찍어주면 되었다. 열과 성을 다하여 아름다운 사진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나도 사진을 찍고 싶어서 영어로 사진 좀 찍어주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중국인들이 놀라워했다.

솔직히 서양인도 어느 나라 출신인지 외모만 보고 알기가 어려운데 동양인이라고 다를까 한다. 중국인은 어떻고, 일본인은 어떻고, 한국인은 어떻고 이렇게 정의 내리는 게 무의미해 보인다. 다만 각자의 문화가 있고, 그걸 존중해준다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기 쉬웠다.

나는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하니 내가 중국어를 한다는 것에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래서 언어는 조금씩 알아두면 좋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사진도 예쁘게 찍었다.


#5

화이트 탬플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니 점심시간이 조금 넘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들어가 블랙 하우스로 갈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썽태우 가격을 먼저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주차장 쪽으로 갔다.

의외로 블랙 하우스까지 가는 썽태우를 잡는 게 쉬웠다. 한 기사에게 블랙 하우스 가냐고 물어보니 눈을 반짝거렸다. 난 그때 직감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타는구나!’


기사는 나에게 150바트에 블랙하우스에 갔다가 시내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썽태우를 이용하지 않고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화이트 탬플에서 블랙 하우스까지, 블랙 하우스에서 시내까지 100바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태울 텐데 라는 생각으로 기사에게 100바트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머뭇거렸다. 이때다 싶어서 나는 치고 들어왔다.


“이미 여러 명 타고 있잖아요.”


썽태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을 하니 기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120바트에 합의 보았다. 아싸!


#6

나와 함께 블랙 하우스에 가는 사람들을 보니 가족처럼 보였다. 혼자 앉아 있는 내가 신기했는지 관심을 보였다.

그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버지니아라고 젊은 여자였다. 가족과 함께 여행 왔다고 했다. 자신의 부모님과 이모라며 가족을 소개했다. 치앙라이에서 2박하고 치앙마이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오늘 막 도착하여 화이트 탬플과 블랙 하우스를 구경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오늘 돌아갈 예정이라 내가 가지고 있던 치앙라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시계탑은 정시마다 노래가 나오고 예쁘게 빛나기 때문에 꼭 보라며 추천해주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느꼈던 것은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오면 꽤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나는 가족과 해외여행을 온 적이 없어서 버지니아가 부러웠다. 울 아빠는 비행기를 못 타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국내 여행을 하면 좋을 텐데 부모님이 더는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버지니아의 아버지는 나에 대한 궁금증이 제법 많으셨다. 버지니아를 통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었다.


“어디 어디 여행했어요?”

“얼마큼 다녔어요?”

“여자 혼자 여행하면 위험하지 않아요?”

“여행경비는 얼마 정도 들었나요?”


이 정도의 질문은 평소에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 것이라 술술 읊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내 심장을 쏘았다.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아요?”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없었다. 기분이 나빴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놀라웠다. 당연히 외로울 때도 있다. 언제나 즐거운 여행일 수는 없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외로움을 격하게 느꼈던 터라 울컥했었다. 빠이에서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다 할 동행을 구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었다. 고독을 씹으며, 고배를 마시며 지내지 않았던가. 심지어 상대적 박탈감도 느꼈었다.

버지니아의 아버지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행하면서 외롭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어요. 어떨 때는 화나기도 했었어요.”


여러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한 가지 솔직하지 못했다. 버지니아가 함께 타는 썽태우 비용을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이 얼마에 탔는지 알고 있었다. 1인당 150바트를 주고 탔을 게 분명했다. 나는 120바트에 탔다. 이걸 솔직하게 말하면 썽태우 기사가 난처해질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150바트예요. 버스를 타고 가도 되긴 하는데 그렇게 되면 번거로워서 썽태우 타기로 했어요.”

“그렇죠? 저희도 1인당 150바트에 탔어요.”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보니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찔렸다. 나를 용서해줘.


#7

블랙 하우스에 도착해서 1시간 동안 구경하였다. 별 볼 게 없었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다만 특이한 물건이 많았다. 뱀 껍질, 악어 껍질 등 평소에 보기 어려운 장식품이 있었다. 그러나 정돈 안 된 창고 같았다. 그냥 장소가 허락되는 한 뭐든지 쑤셔 넣은 것 같았다. 내 취향은 아니라는 건 명백하였다. 대강 구경하고 난 썽태우가 주차된 곳으로 갔다.


#8

시내에 도착해서 버지니아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는 조심스럽게 썽태우 기사에게 120바트를 건넸다. 그리고 짐을 찾으니 시간이 4시였다.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늦는 것보다 낫다며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 2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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