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에 빠진 버스
도시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 2에 도착하니 나의 계획이 틀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 탈 때까지 2시간 정도 남았는데 커피 전문점은 보이지 않고 매점 밖에 안 보였다. 핸드폰 충전하면서 e-book을 읽을 내 계획은 어그러졌다. 이 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내야 하나. 서성거리며 버스터미널 근처를 살펴보았다. 온통 구멍가게뿐이었다. 핸드폰 충전을 안 해놓으면 12시간 넘는 시간을 음악도 없이 지내야 한다. 그건 싫었다. 별 방법을 못 찾고 만만해 보이는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당장 2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어 핸드폰을 켰다. 자연스럽게 e-book 어플을 키고 소설을 읽었다. 버스 타서는 그냥 잠만 자야겠다며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5시 50분쯤이 되었을 때 버스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갔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장거리 이동에 만만히 준비하였다. 짐칸에 놓을 배낭과 들고 탈 가방을 잘 소분하여 챙겼다. 그리고 장거리 버스를 타다 보면 발이 잘 붓는데 그걸 대비하고 운동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었다. 슬리퍼를 신어도 발이 붓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운동화를 신으면 땀도 차고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신의 한 수라 여기며 신발을 갈아 신은 게 나의 두 번째 실수였다.
#3
태국에서 저녁 6시만 되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는데, '플렝 찻'이라고 국가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난다. 태국인들이 다 일어나는 모습을 처음 본 외국인들은 "뭐야, 뭐야?"라며 얼떨결에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외국인 꿋꿋하게 앉아 있으려고 해도 압도적인 분위기에 쭈뼛쭈뼛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국가가 끝나면 다들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 모습을 보면 태국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하게 된다. 어릴 때 국민의례 시간에 국가를 제창하고 묵념도 했던 게 떠오른다. 난 그때마다 언제 끝나나 속으로 시간을 재곤 했다. 묵념할 때는 괜히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잘 계시는지 생각했었고, 그다지 국민의례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자세로 임했다. 그 당시엔 국민의례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태국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충성을 강요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그날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다시 방콕으로 가야 해서 찝찝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플렝 창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앙라이에서 출발하는 버스라 생각했는데 6시 50분에 도착하는 버스는 오지 않았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조금 늦어지니 기다려달라는 말뿐이었다. 왜냐고 물어보고 싶어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마냥 기다렸다.
모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 나라를 가도 모기는 날 못살게 굴었다. 모든 모기가 나의 피를 탐냈다. 모기를 피해 이리저리 걸어 다녀도 내 피를 포기하지 못한 모기들은 휘익 하고 달려들었다.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되는 건 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지루한 시간을 어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버스는 7시 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난 얼른 짐을 싣고 좌석에 앉았다. 안전띠도 잊지 않고 채웠다. 안전 제일!
#5
태국 버스는 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좌석도 쾌적하고 담요도 주었다. 생수 한 병씩도 챙겨주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버스 서비스에 매번 감탄했다. 다만 난방이 없어서 밤에는 쌀쌀했다. 미리 준비한 담요와 차장이 나눠준 담요로 내 몸을 꽁꽁 쌌다. 이렇게 장거리 버스 패션이 완성되었다. 이대로 잠만 자면 되었다.
승객이 심심할까 봐 배려심 많은 차장은 영화를 틀어주었다. 제목은 라스트 사무라이였다. 자막은 태국어였고,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잠잠히 보고 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나왔다. 누구였더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름 하나가 뇌리를 스쳐 갔다.
‘다니엘 헤니.’
그가 나온다는 게 신기했다. 가끔 한국 배우가 외국 영화에 나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흔하지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해 바데리 5% 남은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제목을 몰라 다니엘 헤니의 출연작을 찾다가 지금 보고 있는 영화 제목을 찾았다. 감독이 한국인이었다. 태국어 자막이라 내용을 알 수 없어서 대강 줄거리를 훑어보았다. 그러고 나니 영화 내용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피가 나오고 잔인한 장면이 있어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런 액션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택권은 나에게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인이 만든 할리우드 액션 영화는 어떤지 궁금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싸우는 장면이 많아 조마조마하며 보았다. 이 불안감 때문에 졸리지 않았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 핸드폰 바데리가 여전히 5% 남은 것을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이에 버스 내부의 불도 꺼졌다.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한 십여 분을 곤히 잔 것 같았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 뭔가 싶었다. 여전히 잠에 취해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굉음이 들렸다.
“퍼억!”
눈이 번쩍 떠졌다. 굉음 뒤에 의자에서 느껴지는 격정적인 흔들림. 이게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 흔들림은 심상치 않았다. 팔걸이 양옆을 꽉 붙잡고 중심을 잡았다. 버스가 흔들렸다. 그러다가 하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놀이기구도 이것보다 안전했을 것이다.
‘이대로 죽는 거 아니야?’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매번 여행할 때 어떠한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 몰라 유서를 써야 한다는 주의인데 이번에는 안 썼다. 부모님이 내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태국을 오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내 일기장에 적어놓은 수치스러운 일을 누군가 알면 안 되는데!’
격렬하게 흔들리던 버스는 끝내 멈추었다. 다행히 살았다.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얼른 벗어두었던 슬리퍼를 찾아 신었다. 내 짐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What happen?”
외국인 여자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뛰쳐나왔다. 여자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차장은 잠깐만 기다리라며 제재했다. 그 모습을 보고 커튼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버스가 논에 빠졌다. 그때야 사고를 실감했다. 전복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이 상황을 언니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바데리를 보니 3%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12시가 다 되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한참을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고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침착했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어, 언니. 차가, 차가 도랑에 빠졌어.”
목소리가 떨렸다. 울면 안 되었다.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울음을 참아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각했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아. 끄윽. 난 안 다쳤는데 다른 사람이 많이 다쳤어. 나중에 연락할게.”
“어, 조심하고 연락해.”
전화를 무사히 끝내고 바데리를 확인하니 곧 꺼질 것 같았다. 부랴부랴 카톡으로 바데리가 없어서 연락 못 할 수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대로라면 오후에 도착할 것 같으니 자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